내 것

시흔 넘어 생긴 내 피아노

by 치유하는 뚜벅씨


1.

나 어릴 때 동네에 유치원이 없었다. 가난한 시절, 게다가 북한방송 코 앞에서 들리던 전방 깡촌. 국민학교와 중학교가 하나씩 달랑 있었다. 피아노 미술학원은 우리 다음 세대 이야기. 그래서 내 생애의 피아노는 그저 남의 악기라 생각했다. 애들 어려서 비싼 그랜드피아노 장만했지만 나에게는 그림 속 정물. 딩동댕동 애들 치면 그 앞에서 머리 쓰다듬어 주는 것이 전부. 그 마저도 애들 큰 후 중고가게로 팔려나갔다.


2.


내 것, 피아노가 생겼다.


얼마 전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바이엘 선생님이 숙제를 해오라는데, 피아노가 있어야지. 인터넷 뒤져보니 술 서너 번 안 먹으면, 디지털 피아노 하나 장만하겠다.


3.


포장을 풀고 맞춤한 자리를 잡아준 후 딩동댕 치니 딩동댕 울린다. 내 것, 피아노가 딩동댕 울린다. 뭔가 뿌듯하다. 도레미파하다 결국 정물이 될 지라도, 내 피아노라니.


4.


특별한 목적이 없이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건 기쁜 일이다. 콩쿠르 대회 나갈 일도 음대 입시 치를 일도 없다. 남보다 더 잘 치려고 경쟁할 일도 없고 못 친다고 혼날 일도 없다. 나이 드는 게 좋은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목표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름 위를 산책하는 개처럼 술렁술렁 느렁느렁. 세상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는 삶.


5.


그래도 서원은 세워야지. 음악봉사를 생각해봤는데 말야, 피아노랑 기타랑 막 치면서 애들이랑 어르신이랑 우울한 사람 아픈 사람등과 놀면 참 좋을 것 같아서 말야. 그 생각하면, 구름 위 개는 또 조바심이 나지. 빨리 배우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생각 안 하려고.


6.


유감이라면, 피아노에게, 너 누구거야? 라고 물어보지만, 난 자기 거...라고 안 한다는 것. 쌀쌀맞은 념 같으니.



누구 거? 자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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