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1)
1.
매주 토요일이면 동호회 사람들과 테니스를 친다. 벌써 9년째이다. 춥든 덥든 다 같이 땀을 흘리고, 운동 후에 맥주나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운동이 내 맘처럼 되지 않거나, 실력이 계속 제자리걸음일 때는 스트레스도 받는다.
가장 큰 짜증은 복식 파트너가 완전한 득점 찬스에서 실수를 하거나, 힘자랑하듯이 공을 세게 쳐서 번번이 아웃을 시킬 때이다. 그나마 그이가 나보다 실력이 더 좋은 에이스라면 참을 만한데, 나보다 구력도 짧고 공을 못 치는 사람이라면, 잔소리를 하거나 교정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남 탓하지 말고 게임에만 집중하자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봐도, 파트너가 똑같은 실수를 하면 공을 주우러 가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저 사람이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고 저러나’,
‘왜 이 아까운 시간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을 쳐야 하지’ 등등의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당연히 운동이 즐거울 리가 없다.
2018년 또 하나의 취미 생활을 추가했다. 남성 합창단에 들어간 것이다. 몇 년 전 방송된 「남자의 자격 - 합창편」을 보면서 버킷 리스트에 ‘합창’을 올려놓았다. 그래서 덜컥 합창단에 가입했고,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빠짐없이 연습을 하러 갔다. 실업고등학교에서는 음악을 배우지 않았으니, 중학교 이후 처음 만나는 악보는 생소했고 베이스 파트라는 것도 생경했으며 가끔 라틴어로 노래할 때는 머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
신입 단원이니 행여 민폐라도 끼치면 어쩌나 싶어서, 출퇴근 차 안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강아지와 산책길에서 항상 연습곡을 듣고 악보를 보며 연습했다. 심지어 보컬 학원에 등록해서, 성악 발성 레슨까지 받았다. 그 노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타고나길 남 눈치에 둔감하고 주저함이 없는 성격 때문이었는지, 수십 년 합창단을 한 분들 속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 베이스 파트 소리가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을 즈음에, 신입 단원이 들어왔다. 나이가 많으니 ‘형님’이라 불렀고, 나와 같은 파트였으니 연습할 때는 바로 내 앞에 앉았다. 그런데 그가 번번이 음을 이탈했다.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이해했는데, 매주 그러는 걸 보면서, 첫 음을 내거나, 음폭이 큰 노래에서는 제 음정을 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합창에서, 누군가 다른 소리를 낼 때, 그 불협화음은 매우 듣기 싫다. 그것도 매번 같은 실수를 하게 될 때면, 뒤에 앉은 나로서는 연습에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테니스공을 주우러 갈 때와 비슷한 짜증이 올라온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데도 연습을 하러 왔고, 틈만 나면 노래를 익히려고 이어폰을 끼고 살았는데, 저이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다 엉망이 되고 있다는 억울함과 묘한 분노로 마음이 지옥이 된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테니스에서도, 합창단에서도, 속앓이만 하는 나와 달리 기어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파트너가 공을 못 치면 그 자리에서 잔소리를 하고, 심지어 라켓을 던지기까지 한다. 신입 단원이 자꾸 음을 틀리면, 화를 내면서 아예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코치를 한다. 연습 후 술자리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대놓고 비난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 대신 야단을 치니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오히려 실수한 사람을 쥐 잡듯이 잡는 기 센 사람들에게 더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자기는 뭘 얼마나 잘한다고?’ 같은 심통도 올라온다. 사실은 지적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내면 속의 바로 나여서, 투사의 과정에서 내가 나에게 불편해지는 것이다.
2.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이 도리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 취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수행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동료는 그러지 않은 것 같다는 ‘본전 생각’과 나는 잘못이 없고 저 사람만 잘못이 있다는 ‘남 탓하는 습관’이 속 좁고 포용력 없는 마음으로 보인다. 노추老醜의 대표적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면교사의 교훈은 실수한 사람에게가 아닌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을 통해 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면의 나에게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그 공을 일부러 못 받을 리는 없다. 잘하고 싶은데 안될 뿐이다. 노래를 자꾸 틀리는 사람 역시 가장 속상한 것은 본인일 것이다. 주변에 눈치도 보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무수히 생겼겠지.
내 눈에 성이 차지 않는 게 세상 사람들이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인 것 같다. 식당의 음식은 늦게 나오고, 주차장에 차들은 어긋나게 서 있고, 배우자는 번번이 뭔가를 잊어버리고, 나쁜 습관을 고치라고 잔소리를 해도 자식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이다.
그럴 때, 내 마음에 평화를 주는 방법은 ‘그 사람도 잘하려고 했겠지. 다만 잘 안되었을 뿐이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새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