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막말이 소환한 글
큰형과 13년 터울이다. 어려서는 무서워 형 앞에서 말도 못 꺼냈다. 오십이 가까워 늦둥이를 보신 늙은 아버지와는 다른, 실감 나는 아버지 느낌이었다. 나이가 드니 형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아서 좋다. 오히려 다섯 형제 중 장남과 막내가 가장 잘 통하고 친밀하다. 중간의 형들이 샘을 낼 정도다. 같이 술을 마시면, 둘째형은 큰형에게 ‘안주 좀 잘 챙겨드시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젓가락으로 생선을 집어 입에 넣어드린다. 큰형은 취하면 작은형들에게는 어린 시절에 많이 때린 일을 이야기하지만 오십이 넘은 나에게는 귀엽다며 뽀뽀를 한다.
새해 첫날, 경기도 전원주택에 사는 큰형 집으로 형제들이 모였다. 고기나 구워 먹자고 내가 제안했다. 몇 달 전부터 큰형은 2층짜리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예순여섯 살에도 여전히 자존심은 펄펄하고 성격이 꼬장꼬장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족들을 다 내보내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는 사람이다. 사실은 내보낸 것이 아닐 것이다. 형수도, 조카들도 성격 유별난 노인네가 싫다며 자발적 독립을 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개에게 먹이를 주며, 잔소리를 듣지 않고 낮술 한잔하는 생활이 좋다’는 그 말이 동생들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소리임을 어찌 모르랴. 김장 김치가 맛있다고 하니 큰형은 본인이 직접 담갔다며 막내 것을 한 통 챙겨놨다고 했다. 그것도 한 마리에 1만 5천 원 하는 비싼 갈치를 넣어 만든 것으로 특별히 담아놨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후 슬쩍 큰형에게 말했다. “요즘 주말마다 시청 가지 않아요?” 형은 그렇다고 했다. 태극기를 들고 시청 앞에 나가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외친다고 했다. 같은 시각, 막내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데, 형제는 이렇게 지척에서 다른 주장을 외치고 있다.
오래전부터 큰형과 나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 지지하는 정당도 달랐고 응원하는 대통령도 달랐다. 그렇다고 부딪친 적은 없다. 형이나 나나 정치적 신념이 너무 강해 누가 뭐라 해도 절대 변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어느 시점부터 큰형이 대통령 취임식을 쫓아다니고, 누군가 대통령의 욕을 하면 독수리 타법으로 반박의 댓글을 쓰는 그 행동에 묘한 안도감 같은 감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이는 이 모든 정치적 열정이 이빨 다 빠진 늙은 맹수의 마지막 소일거리라면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펄펄한 기백으로 살다가 세상의 중심에서 밀리고, 가정 안에서도 괴팍한 가장으로 내몰리는 내 큰형이 그나마 우울증에 빠지지 않은 것은 ‘으르렁’까지는 아니더라도 ‘으릉’ 소리 정도는 낼 수 있는 대상과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덕수궁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때때로 너무나 뻔한 상식적 사안에 대해서도 억지 주장을 펼치는 그들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저쪽 광장의 사람들 눈에도 이쪽 광장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무엇보다 저쪽 광장에 내 형과 누군가의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나와 다르더라도, 그 다름이 각자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큰형에게 전화를 했다. ‘시청 앞에 가더라도 옷 따뜻하게 입고 가시라, 앞줄에 서지 말고 뒷줄에만 있다 오시라, 공연히 촛불 든 사람 자극해서 험한 꼴 보지 마시라, 형 눈에 방송이 전부 빨갱이로 보이더라도 지역감정이나 여성 비하 조장하는 철없는 애들 노는 인터넷 사이트는 들어가지 마시라…….’ 늙어가는 막내는 더 늙어가는 큰형에게 스피커폰에 대고 이렇게 잔소리를 한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뒷자리에 큰형이 챙겨준 김치 통에서 내 생각하며 담갔을 김치 냄새가 폴폴 난다. 내 마음도 묘한 슬픔과 혼란으로 차와 함께 흔들린다.
언젠가 썼던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이유는, 세월호 5주년에 벌어진 차명진의 막말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인정한다는 것과 인간이 아닌 짐승의 말을 하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 테러 수준의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성격이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짐승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잣대는 단 하나다. 타인의 아픔에 눈꼽 만큼이라도 공감하는가, 아닌가. 창졸간에 새끼를 잃은 유가족을 향해, " 회 쳐먹고, 찜 쪄먹고, 뼈 까지 발라 먹는 다는" 말은 사람의 언어가 아니다. 어쩌면 짐승도 하지 않을 말이다. 슬프다. 차명진과 여전히 꽤 많은 차명진이라는 어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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