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neon Jan 17. 2018

ditto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469.

오늘은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며, 네가 늘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네가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털어놓아야겠어. 이런 이야기가 너한테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몰라. 너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 있고, 너한테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귀한 것이 아닐 테니까. 너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잖아. 하지만 나는 달라.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이야.


언젠가 다니엘 수도원장님이 내가 오만해 보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 그분 말씀이 맞을거야. 물론 내가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하지는 않아.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인내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하지만 사람들을 사랑한 적은 없어. 수도원에 선생님이 두 분 계시면 나는 학식이 더 높은 분이 좋았지. 가령 약점이 있는 선생님을 바로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좋아하지는 않았어.


그럼에도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건 네 덕분이야. 너만은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 가운데 오직 너만을 말이야.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는 어림도 못할거야. 그건 사막에서 솟구치는 샘물이고,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같은 거지. 나의 마음이 황폐하게 메마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이 닿을 수 있는 자리 하나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네 덕분인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새삼스러운 사랑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