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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Feb 28. 2020

탱고의 날이 12월 11일인 이유

Carlos Gardel y Julio de Caro, 새 시대를 열다


1. 쓸 수가 없다, 써야만 한다. 


빈문서1을 앞에 두고, 오래된 중고서점을 상상한다.

유리문을 당겨 열고 한 발짝 내디딘다. 구릿빛 종이 문에 부닥쳐 짤랑 소리를 내고, 눈앞에는 MDF 합판 책장의 미로 길이 펼쳐진다. 종소리가 미로 속으로 사라질 때, 나는 어쩐지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저 미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찰의 돌무더기처럼 책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야 한다. 책 먼지 냄새를 나침반 삼아서 구석의 구석으로 들어가면, 겨우 다다르는 목적지. 고전문학 서가.

익숙한 이름들이 나를 반긴다. 이를테면 단테의 <신곡>,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것들이. 아니, 정말 익숙한 이름인가? 고전은 언제나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다시 읽으려는 책', 혹은 '남들의 인용으로만 읽어본 책'이 아니었나, 부끄럽게도.


하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나는 고전에 도전하겠다며 용기를 낸다. 그리고 책장에 손을 뻗는데, 내 몸이 갑자기 작아진다. 작아진 나의 더 작아진 손은 허공에 멈춘다. 여전히 책장을 향한 채로. 종이 한 장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한 책장. 거기서 한 권의 책을 빼내는 건 무리다. 내겐 그런 악력이 없을뿐더러, 힘이 있다 하더라도 잘못하다간 다른 책마저 우르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이번 상상은 망했다. 나는 감히 저 거대한 이름을 함부로 건들 수 없다. 두려움과 자괴감에 상상은 악몽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압도된 채 서 있다가,

나는 다시 이 빈문서1 앞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반년이 지나있다. 내가 감히, 라는 마음으로 머물러 있던 게. 하지만 그사이, 또 다른 마음이 자라났다. "해야만 한다.". 고전은 읽어야만 한다. 최근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첫 책이다. 어렵지만, 읽을만하다.

마찬가지로, 이 글은 써야만 한다. 나의 빈문서1은 채워져야만 한다. 내가 이 글에 감히 담으려는 건, 탱고의 도스토옙스키자 단테, 셰익스피어인 인물이다. 감히 쓰지 못해 6개월이나 머뭇거리게 한 거장, 바로 훌리오 데 카로Julio de Caro다.




2. 아르헨티나 탱고의 날, 12월 11일


나는 이 글을 12월 11일에 올리고 싶었다. 쓰고 싶어서 머뭇거린 지 100일쯤 되는 시점에.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되는데, 나라고 글 하나를 못 쓸까. 결과적으로 못 썼다. 하지만 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민망하지만 여전히 12월 11일을 언급하긴 해야 한다. 훌리오 데 카로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 말이다. 12월 11일은, 훌리오 데 카로가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2월 11일을 탱고의 날로 지정해 매해 축제를 벌인다. 12월 11일은 두 위대한 뮤지션의 생일이기도 하다. 바로 카를로스 가르델CarlosGardel과 훌리오 데 카로Julio de Caro. 사랑스럽게도 탱고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이 두 사람이 같은 날 태어났다.

두 사람이 최초의 탱고 뮤지션인 건 아니다. 이 둘은 하지만 단순한 코드 몇 개와 즉흥연주로 이뤄진 탱고를 전문적인 음악 장르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탱고 연구자들은 이들이 Guardia Nueva의 시대를 열었다고도 표현한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1890년 12월 11일에 태어난 카를로스 가르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수이자 배우로서 활동하던 그는 1917년, "Mi Noche Triste"라는 곡을 발표했다. 슬픈 멜로디와 가사를 갖춘 이 곡은 전에 전혀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탱고였다. 그 곡 이후 탱고는 멜랑콜리한 느낌이 들게 되었고, 탱고의 가사는 시와 같아졌다.


자세한 건 지난 포스트 참조.


가르델은 노래로서의 탱고에서 비전을 봤다. 그는 시에 멜로디를 입히거나 작사가를 기용하는 등, 가사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남들과 다르게 노래를 불렀다. 일반 대중가요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처럼 불렀다. 가사의 스토리에 신경을 써서 불렀다. 그의 방식은 탱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혁신이 되었다.

탱고 뮤지션들은 지금까지도 가르델처럼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대중은 여전히 가르델의 음악을 듣는다. 가르델이 일찍 세상을 떠났음에도, 사람들은 그가 해가 갈수록 노래를 더 잘한다고 말한다. 약간 기괴하지만, 탱고에 있어 가르델의 입지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가르델이 문을 연 탱고의 새 시대는 훌리오 데 카로를 통해 발전했다. 1899년 12월 11일에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훌리오 데 카로. 그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오케스트라 리더였다. 여러 악기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스타일을 확립했다. 작곡은 물론 편곡에도 신경을 썼다. 탱고 뮤지션들에게 편곡 능력은 거의 필수로 여겨지는데, 그 역시 데 카로의 영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탱고 뮤지션은 훌리오 데 카로의 영향을 받았다. 좋든 싫든. 인지하든 안 하든.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아졸라는 일찍이 훌리오 데 카로가 탱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스윙을 만들었다고 찬양한 바가 있다.



p.138
Piazzolla describes how this ensemble set a precedent for "tango swing," through the core elements of rhythm, percussion, and accentuation, which for him is "the most important in the interpretation of tango; it gives it the swing."
                                                                                
- Link, Kacey, <Tracing Tangueros>, Oxford University Press. Kindle Edition




3. 가르델과 데 카로의 유산


카를로스 가르델은 1935년 45세의 나이로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훌리오 데 카로는 80세까지 살았지만,  1954년에 은퇴를 하고 음악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건 1977년 12월 11일, "제1회 탱고의 날" 기념식이 있는 날이었다. 행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루나파크에서 열렸다. 뮤지션들은 훌리오 데 카로에게 헌정하는 공연을 했고, 수천 명의 관객과 함께 그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상상만으로도 뭉클하단 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가르델과 데 카로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 그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있단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수백 년 전의 문학 작품이 여전히 읽히는 걸 보면. 그들의 문학적 성취가 여전히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단테의 <신곡>을 알게 된 건, 모 작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몇 번이나 칭송했기 때문이다. 탱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훌리오 데 카로를 처음 접한 건, 피아졸라의 "Decarisimo"를 통해서이다. 피아졸라는 1961년, 위대한 마에스트로에 헌정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물론 이런 배경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지만, 이 곡을 통해 탱고 고전에 귀를 열게 된 건 사실이다.


피아졸라를 비롯해 많은 뮤지션이 훌리오 데 카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재미난 건 이들의 음악 스타일이 각기 다르단 것이다. 데 카로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탱고가 풍성해졌다. 함부로 뽑을 수 없는 나무가 되었다. 그러니 내 주제에 거장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두려운 건 당연한 일.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었다. 6개월이 걸려서야 드디어 이렇게 몇 자 적는다.



Astor Piazzolla Y Su Quinteto, Decarísimo (1961)


덧1.

이 곡이 발표되고 1년 후인 1962년에 훌리오 데 카로가 "Piazzolla"라는 화답 곡을 지어줬다는데, 들어본 적이 없다. 존재하긴 하는 걸까.



덧2.

이 곡에 바이올린을 연주한 시몬 바쥴Simone Bajour는 탱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힌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탱고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무시했지만 엘비노 바르다로Elvino Vardaro만큼은 존경했다고 한다. 엘비노는 피아졸라의 첫 번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그가 대놓고 덕질을 한 바이올리니스트…. 두 사람의 연주는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느껴진다.

시몬 바쥴은 이 앨범을 녹음한 뒤로 쿠바의 하바나로 떠나고, 다시는 탱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딱 한 번, 1975년 Todo Corazon이라는 곡을 녹음할 때 제외하고. 흥미롭게도 Todo Corazon은 훌리오 데 카로가 작곡했다. 그 곡은 탱고 바이올린 솔로 중에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고, 소문난 집에 먹을 거 없단 말이 무색하게 진짜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 제일 아름답다...  이렇게 다시 한번, 훌리오 데 카로의 유산이 이어진 셈이다.


Szymsia Bajour with Luis Stazo, Todo Corazon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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