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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Jun 29. 2019

거울도 함께 울었는지 뿌예지고

Carlos Gardel, mi noche triste (1917)

1. 탱고는 역시 순정마초?


탱고를 안 듣는 사람이라도 탱고 음악에 대해 일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니, 탱고를 안 듣는 사람일수록 일관적인 이미지를 갖는다고 해야 하나?) 약간 멜랑꼴리하고, 야시시하고, 살짝 뽕끼가 느껴지는 거. 이젠 거의 십 년 전 노래지만, 파리돼지엥이 부른 ‘순정마초’처럼 말이다. 만약 탱고를 조금 더 관심 있게 들어본 사람이라면 탱고를 짠짠짠짠 리드미컬한 음악이라거나, 클래식한 음악이라고 할 테지.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를 안다고 하면서.


이곡 지금 들어도 고퀄인게 진짜 달밤의 미스테리다... 

전부 다 맞는 말이다. 탱고는 멜랑꼴리하고 치명치명한 멜로디와 다이내믹한 리듬을 갖고 있고, 서양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피아졸라가 유럽에 가서 클래식 음악을 배운 것도 사실이고. 아니, 피아졸라까지 갈 것도 없다. 탱고 앙상블의 필수요소인 바이올린. 탱고 바이올린의 거의 모든 연주자가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이미 1910, 20년대부터 말이다. 그리고 그 덕에 탱고가 단순 백그라운드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으로 발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 몇 개의 ‘탱고스러움’ 중에서, 특히나 탱고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멜랑꼴리함’을 탱고의 가장 주된 특징이라고 손꼽고 싶다. 그 야시시하고 치명적인 탱고 정서가 탱고를 룸바, 삼바 같은 라틴뮤직부터 클래식이나 재즈까지-  여타 장르와 구분 짓는다고 말이다.



2. 1917년, 탱고의 왕


탱고가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가벼운 리듬, 단순한 코드, 그리고 장조풍의 멜로디. 이민자들은 가난해도 아메리칸드림이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산업은 발전하고 경기도 호조를 이루고 있었으니 슬플 이유가 없었다. 탱고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법. 그건 나나 당신, 당시 사람들, 그리고 탱고에게도 마찬가지다. 경기 성장은 주춤해지고, 사회는 자본의 경제 양극화는 점차 커지고, 빈민 슬럼가가 생기고, 이민자들은 향수병에 걸리고. 더 이상 발랄한 멜로디에 춤을 출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탱고의 운명을 바꾼 아주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바로 탱고의 왕,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이 “Mi noche triste”라는 곡을 녹음한 것이다.


배우 이민우 씨 닮은 듯...?

우수에 젖은 눈망울, 고른 치아, 웃는 입꼬리, 그리고 삐뚤게 쓴 모자. 카를로스 가르델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이었다. 그 역시 프랑스 출신의 이민자라 현지 사람들의 정서를 백번 이해했고, 그 감성을 가지고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찍고, 연기를 했다. 그래서 탱고 뮤지션이기에 앞서 아르헨티나 대표 셀럽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르델의 그런 전반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탱고의 왕"이라고 콕 집어 부르는 것은, 단지 내가 탱고 덕후여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녹음한 Mi Noche Triste가 탱고의 운명을 바꿨기 때문이다.


Performed by Carlos Gardel (with José Ricardo on guitar) on 9 Apr. 1917 in Buenos Aires


"mi noche triste", 번역하자면 "나의 슬픈 밤"

이 곡은 1915년 사무엘 카스트리오타 (Samuel Castriota)이라는 피아니스트에 의해 처음 작곡되었고, 이듬해 우루과이 출신의 시인 파스쿠알 콘투르시(Pascual Contrusi)가 멜로디에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1917년, 이 곡을 접한 가르델은 기타리스트 호세 리카도(José Ricardo)와 함께 연주하고 녹음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제목이 이렇게 슬픈 탱고도, 멜로디가 이렇게 슬픈 탱고도, 그리고 가사가 있는 탱고곡도.

카를로스 가르델이 탱고의 왕이 된 건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는 탱고에 멜랑꼴리한 늭낌을 최초로 입힌 사람이기도 하고, 탱고 노래를 최초로 부른 사람이기도 하다. 바로 1917년, "mi noche triste"라는 곡으로 말이다.



3. 거울도 함께 울었는지 뿌예지고


탱고 음악사에서는 "Mi noche triste"가 녹음된 1917년을 구시대 Guadia Vieja와 신시대 Guadia Nueve로 나누는 기점으로 보기도 한다. 이 곡을 기점으로 탱고가 멜랑꼴리해졌기 때문이다. 멜로디는 단조가 되고, 템포는 느려지고, 슬프고도 치명치명한 가사를 갖게 되었단 말이다. 뭐 이렇게까지 거창하냐고?


가사를 한 구절 한 구절 살펴보면 전혀 허풍이 아니다. 이보다 더 슬플 수가 없다.

탱고의 가사는 주로 [상황 설명 (보통 이별 상황) - (사실 엄청 과장된) 감정 묘사]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스페인어를 못해서 제대로 번역하긴 어렵지만,  대충 살펴봐도 그냥 슬프다.


(1) 상황

Percanta que me amuraste
En lo mejor de mi vida

내 인생 최고의 순간에 날 걷어차버린 너
(percanta는 '이 죽일 놈의 사랑'쯤으로 해석해야 할까. 아니 여자니까 '년'?)
Dejándome el alma herida
Y esplin en el corazón

네가 날 떠나서 내 영혼은 상처를 받고 심장엔 가시가 박혔어


(2) 감정 묘사

Y si vieras la catrera
como se pone cabrera
cuando no nos ve a los dos.

저 침대를 봐봐, 우리 둘이 같이 있지 않아서 화가 잔뜩 나있어


y el espejo esta empañado,
si parece que ha llorado
por la ausencia de tu amor.

그리고 저 거울을 봐봐, 너의 사랑을 잃고 울었는지 안개 낀 듯 뿌옇게 됐어


Y la lampara del cuarto
tambien tu ausencia ha sentido
porque su luz no ha querido
mi noche triste alumbrar.

그리고 이 방의 램프도 네가 떠난 걸 느끼고 있어,
왜냐하면 램프도 나의 이 슬픔 밤에 불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거든



세상에나. 침대에, 거울에, 램프를 의인화해서 슬픔을 묘사하다니.

뭐가 떠오르지 않는가, 왕가위 영화 <중경삼림> 말이다.


영화에는 633(양조위)이 방 안에 있는 비누, 인형, 걸레에게 말을 걸면서 이별의 감정을 투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작아진 비누에게 "너무 야위었다"던지, 걸레에게 "너무 축 처져 있지 말라"든지 하면서.

중경삼림, 1994

왕가위가 영화를 찍기 전에 mi noche triste를 들어봤을까? 가사도 읽어봤을까? 그의 영화 중엔 부에노스 아이레스 배경의 <해피투게더>도 있으니 어쩌면 그러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망상이지만 참을 수 없는 상상이기도 하다. 아무튼 1917년에 나온 곡 하나가 1994년 영화 명대사 같은 가사를 지니고 있고, 2019년에도 먹히는 애잔함을 소구 한다. 아니, 뭐 1917년이 대단할 건 없다. 사실 고조선 시대의 "공무도하가(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는 지금 봐도 슬픈 가사니까.

아무튼 확실한 건, 탱고는 모두가 생각하듯 멜랑꼴리를 갖고 있고, 이 1백 년 된 슬픈 음악은 수천 년이 지나도 슬픔을 간직한 채 이어질 거란 사실이다. 저 고조선의 노래가 그러하듯이. 모든 사랑과 이별 노래가 그러하듯이.

 





덧 1.

파스쿠알 콘트루시가 mi noche triste에 가사를 입힐 땐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한 일이었다. 이 양반은 이런 전적이 또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탱고곡 중 하나인 "La cumparisita"가 같은 예다. 무명 뮤지션이 쓴 곡에 멋대로 가사를 붙였다가 대박이 나버린 것이다... 당시엔 저작권 관련 제도나 지식도 없었고, 원작자는 분노하고...  하긴 지금도 저작권 문제가 비일비재한데 그때야 오죽했을까. 지적재산권도 재산입니다. 그러니 이 보잘것 없는 글도 퍼가실 땐 출처를.



덧 2.

탱고가 슬픈 정서를 계속 갖고가게 된건 반도네온 덕도 크다. 음색 자체가 구슬프고, 연주하기가 괴랄맞아서 초기 연주자들은 천천히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슬픈 사실. 그래서 탱고 역사로 따지면 반도네온이 굴러들어온 돌인데도 불구하고 센터를 차지하게 된 것. 그래서 악기든 인생이든 한방인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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