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wan, 2015.04.30 - 2015.05.04]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두부에 관한 이야기다. 여행기는 그 다음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두부다. 두부에 대한 내 첫 기억은 일곱 살 때다. 오후 다섯 시마다 두부트럭 아저씨가 종을 딸롱 딸로롱 울리며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섰고, 그때면 나는 천 원짜리 한 장 들고 뛰어 나가 새하얗고 따끈따끈한 두부를 한 모씩 샀다. 그러니 내 알량한 기억만으로도 20년째 두부를 사랑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 기억은 확실할까? 나는 앰버에 대한 내 기억이 틀린 것을 확인한 이후로 그 어떤 기억도 확신할 수 없다. 이것도 사실, 분당에 살 때인지 일산에 살 때인지 좀 헷갈린다)
어쨌든.
영어연수를 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두부를 먹을 수 없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두부 때문에 평생을 해외에선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귀국해서는 일주일 동안 순두부찌개만 먹었다. 아침에 집에서 엄마의 순두부찌개를 먹고, 점심에 학교 앞 분식집 참참참에서 또 순두부찌개를 먹은 적도 있었다. 기억을 되돌릴 것도 없이, 요즘도 아침마다 출근 전에 생두부를 먹는다. 맨날 먹음에도 나는 '아 진짜 맛있어'라고 매번 속으로 감동을 하고, 점심엔 순두부집을 갈까 생각을 한다.
이런 내가 대만을 여행지로 고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만은 취두부의 나라니까. (... 취두부를 중국에서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을 갔다 온 후의 일이다....) 대만 여행의 목적 중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하는 게, "취두부 도전!"이었던 셈이다.
앰버와 시펀 지우펀을 간 날 처음으로 먹은 음식도 취두부였다.
"콩 두" 말고는 뭐라고 썼는지 알아먹을 수 없는 포장마차에서 취두부를 판다. 근데 사실 뭐라고 썼는지 알 필요는 없다. 취두부는 자신의 냄새로써 반경 10미터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니까.
Oh) 내가 취두부다(Oh..... 이런 느낌
취두부를 먹고 싶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냄새와 맛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취두부 먹다가 토했다는 후기도 읽었으니까. 앰버도 "Stinky tofu?" 하며 질색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에서 오기가 더욱 생겨나는 인생힘들게사는년이라 당연한걸 왜 묻냐며 꼬챙이를 하나 들고 취두부에 덤볐다. 냄새만으로 K.O. 당할 뻔한 상황에서 나를 살려준 것은 역시나 '두부느님'. 식초 냄새가 굉장히 고약하긴 했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두부콩깍지가 두텁게 쓰여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뭐. 먹을만했다.
취두부는 겉표면이 과자처럼 바삭바삭해야 맛있는 거라고 했다. 아쉽게도 내가 먹은 취두부는 물컹한 느낌이 있어, 그리 훌륭한 퀄리티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 다음날 야시장에서 시식한 취두부 조각은 다행스럽게도 아주 바삭바삭했다.
위에 두부콩깍지라고 썼지만, 아닌 게 아니라 두부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얼굴을 구기게 만드는 것은 두부보다는 함께 곁들이는 채소... 인 듯. 앰버 말로는 대만의 김치 같은 거라는데, 양배추랑 당근 같은 채소들이 식초에 절여져 있다. 그냥 차갑게 먹는다면 피클 같은 느낌일 텐데, 문제는 그걸 뎁혀 먹는다는 것. 쉰내가....... 정말이지 쉰내가.......
두부 덕후의 입장으로선 양배추 따위의 쉰내 때문에 두부느님께서 냄새나는 음식이라고 오명을 받는 게 조금은 아쉽다. (두부가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는 이번 여행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이고, 두부의 본고장 중국에 가서 또 이런저런 두부를 맛봐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