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발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neon Aug 19. 2015

위대한 자들의 호의

[Taiwan, 2015.04.30 - 2015.05.04]



대만에서는 취두부 말고도 엄청 많이 먹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치 앰버와 친구들은 나를 사육하듯이 먹여댔다. 대만에 가는 이유가 망고빙수나 버블티, 야시장 먹투어 등 음식 때문이라는데 사실 나는 (취두부 말고는) 별 흥미가 없었다. 빙수 버블티 다 안 좋아하고, 뭣보다 길에서 음식 먹는 걸 싫어해서. 아마 내가 5일간, 아니 앰버와 함께 있었던 이틀 동안 먹은 길거리 음식은 지난 5년간 먹은 길거리 음식의 양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취향을 벗어난다는 것, 이것은 하나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저것 먹어볼래? 라며 권하는 앰버를, 서툰 영어로 '먹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데 있으면 바로 말해'라고 말하는 부부를, 말없이 다섯 시간 동안 운전하며 영화에 나왔던 집을 데려가 준 창창을 앞에 두고 안 먹겠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사실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한국인 친구를, 이틀이나 모시고 다니며 이것저것 음식 사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힘들고 귀찮아도 내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배려였던 것. 

슬픈 게, 이런 깨달음은 극한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다는 것- 

앰버와 친구들은 정말 쉬지 않고 먹었다. 배부르다고 하면 말도 안돼 그럴 수 없어 그래선안돼-라고 나를 다그치며 이 음식 저 음식을 사줬다. 신물이 올라오고, 남은 음식을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을 먹게 될 때까지. 그리고 결국, 타이중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앰버가 토하기까지. 
얘네 왜 이렇게 미련하게 먹는 거지. 싶었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나를 위해 호의를 베풀고 있었던 거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게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대만의 음식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그래서 나도, 쉬지 않고 먹은 걸 하나하나 다 기록한다. 
(근데 쓰다 보니까 나 완전 맛있게 먹은 듯)
 

스펀에서 먹은 땅콩 아이스크림.
풍등 날리기로 유명한 스펀에 명동보다 한국인이 많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풍등가게도 있었고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간식집도 여럿 있었는데 이 땅콩아이스크림집도 그중 하나. 
한국말로 땅콩아이스크림이라고 쓰여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만드는걸 보니까 전병 같은 거에 땅콩설탕과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랩처럼 말아서 준다. 신기한 게 이 안에 '고수'를 넣는다는 점. 고수는 향이 강해서인지 빼고 먹는 사람도 많았다. 달고, 시원했다.


보기만 했을 때는 호빵에다가 망고시럽을 뿌린 건 줄 알았는데, 먹고 나니 아니었다. 고기만두 위에 치즈를 얹은 것. 나중에 보니 편의점에서도 팔더라. 
나는 여기까지 먹고 배가 너무 불렀다. 그 다음은 다 덤이다.
그러나... 


배불렀는데 완전 맛있게 먹은 소시지. 앰버 말로는 대만식 소시지라고. 소시지 장인(?)이 즉석에서 돼지 창자에다가 고기를 넣고 불에 구워서 준다. 소시지를 직접 만드는 포장마차는 태어나서 첨봤다. 그리고 내가 그 광경을 보고서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줄은 몰랐다. 대만식 소시지는 이것 말고도, 콩으로 만든 게 있다고 했다. 두부덕후 콩덕후인 나는 그것도 무척 먹고 싶어졌는데, (응, 나는 배불렀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야시장에서 맛볼 기회가 생겼다. 


실컷 음식 먹고 목을 축이려 음료수를 샀다. 노란 건 그냥 과일주스, 까만 건 버블티인데 이게 좀 특이하다. 
위의 사진에 있는 게 음료의 주재료인데, 앰버 말로는 무슨 과일인지 씨앗인지를 말리고 빻아서 어쩌고 저쩌고. 그녀의 영어도 나의 영어도 부족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맛은 어쩐지 우롱차에 설탕 섞은 맛이 났는데, 그 전날 대만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마신 물도 이것이었다. 아마 대만의 대중적인 음료인 듯.  
버블티지만 흔히 마시는 타피오카 펄보다 작은 개구리알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작아서 마시기엔 더 편했다.  
 

음식으로 체력을 충전한 담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지우펀에 갔다. 실컷 구경을 하다가 웬 허름한 가게에 들어섰다.
이 음식의 이름이 뭔지 알려줬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구마 전분, 녹차가루, 타로 전분 등으로 경단을 빚고, 팥 등과 함께 설탕물 같은 데에 넣어서 먹는 간식이다. 우리는 차갑게 먹었는데 따뜻한 버전도 있다고. 맛은 감자떡을 먹는 거 같았는데 난 감자떡을 별로 안 좋아해서. 가위바위보에서 지는 바람에 남은 경단을 다 먹을 땐 좀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이 음식은 일본에 갔을 때도 먹은 기억이 있다. 나라에서 사슴들을 보고 너무 더워서 팥빙수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팥빙수인 줄 알고 주문한 음식이 이게 나와서 좀 당황했었지...


단걸 먹었으니 짭짤한걸 먹어야겠다며 앰버가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가게 내부가 깨끗하고 넓어서 유명한 맛집인가 했는데 새로 생긴 집이라고. 3개월 전에 왔을 땐 없었다고. 
어쨌든 이런저런 음식을 주문했는데 전부 다 짜서, 앰버의 바람대로 된 건 분명했다.
우리가 먹은 건 총 네 가지 요리였다. 죽순과 탕수육처럼 튀긴 고기 덩어리를 넣은 수프, 죽순과 삶은 고기를 얹은 밥 (이게 맛있었다), 들깨 기름을 두른 국수. 대만에 육우면이 유명하댔는데 이게 그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소룡포!
딘타이펑의 원조가 대만에 있다는데 갈 기회는 없었고, 메뉴판에 샤오롱바오가 있길래 (배부르지만) 기쁜 마음에 주문했다. 이날 종일 비도 오고, 오토바이로 돌아다닌 덕분에 얼굴에 까만 게 많이 묻었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활짝 웃으며 사진 찍음. 눈밑에 까만 거 뭐야...
하여튼. 일본 가서 초밥 못 먹고 온 게 여태 한인데, 대만 가서는 소룡포를 먹었다.



가게 안에 있는 동안 계속 비가 내렸다. 
역시 나는 비를 몰고 다니는구나, 싶었지만
덕분에 계속 앉아서 쉬었고, 
타이베이로 다시 또 오토바이를 몰아야 하는 앰버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두부를 모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