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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Aug 19. 2015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망고빙수를 못 먹었어

[Taiwan, 2015.04.30 - 2015.05.04]

여행의 세 번째 날인 일요일. 

도자기 마을 잉거를  가려했으나 엠버 친구 Jeng Chang의 호의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가 타이중으로 결혼식을 가는데, 가는 길에 나랑 앰버를 타이중 근처 루강에 데려다 준다는 것. 결혼식 끝난 후에는 함께 그 근처인 장화를 갔다가, 저녁에 앰버의 또 다른 친구(이자 나의 새로운 친구가 된) Bu Bu까지 만나서 함께 야시장에 가자고. 

앤 너가 편한대로 해, 거절해고  괜찮아-라고 했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계획이라고 해봤자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으니까.. 나는 쿨하게 계획을 버리고 그들의 호의를 감사히 받았다. 



그렇게 출발하게 된 타이중 & 루강 & 장화 여행

여행이라고 쓰고, 먹방기라고 읽는다.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엄청나게 많은 음식과 엄청나게 뜨거운 더위를 함께 먹었다.

너무 배불러서 토할 지경이었던 스파르타 먹투어!


그 첫 번째 관광지는 '루강'이다



  

루강은 대만의 서해안에 위치한 해안도시다.

중국 대륙과 가까워서 일찍부터 산업이 크게 발달했고

18세기에는 대만 제2의 도시였다. 


라고 어떤 사람의 블로그에 쓰여있는 걸 발견했다. 

앰버와 다니면서는 사실 여기가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정말 선입견 없이 본 루강에 대한 감상은


-덥다. 겁나 덥다.

-도교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절이 하나 있었고, '천후'라는 여신을 모시는 절이라 특이했다.

마침 굿판 같은걸 하고 있었는데 퍼레이드 중에 EXID 위아래가 나와서 깜놀. 

-덥다. 겁나 덥다.

-해변가라 그런지 해산물이 많다.

-덥다. 겁나 덥다.

-올드스트릿이 잘 발달되어 있다.

-덥다. 겁나 덥다.


이 정도. 





루강의 오래된 절에서 신내림? 행사를 보고 점심을 먹었다.

먹투어의 포문을 연 음식은 seafood omelette

시푸드 오믈렛이라고 해서 먹겠다 했는데 굴이 들어있었다.

앰버도 나도 굴을 싫어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서로 배려해서 주문했다가...  

굴이 엄청 들어간 흐느적거리는 이 음식을 먹어버리고 말았다.  




루강 올드스트릿을 걷던 중 눈에 띈 '아이스께끼' 아저씨.

망고빙수를 먹어야 해,라는 사명감을 갖고 걷던 중에 아저씨가 망고 아이스크림을 팔길래

한스쿱에 10원, 한국돈으로 350 원주고 먹었다.

이제부터 배부르기 시작





그 전날 종일 오토바이를 몰고, 세네 시간 자고 일어나 나와서 관광을 한 앰버는 너무 지쳐 보였다.

더위에 항복한 우리는 루강 구경을 포기하고, 그냥 카페에 가서 창창을 기다리기로 결정. 


Shark Bites Toast라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여긴 내가 대만 여행 중 방문한 유일한 카페다.

시원한 곳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대만 여행에서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는데. 


펜케익을 별로 못 먹은 앰버는 배가 고프다며 와플을 주문했다.

망고 와플을 주문하려 했으나 대낮부터 망고가 다 떨어져서 실패 

주문한 음식은 30분 뒤에 나오고 (와플은 다 식은 채 굳어있었다)

앰버는 음료수 하나도 주문했는데 그건 40분 뒤에 나왔다.


대만에서 놀란 건 이거다. 뭘 사려해도 계산대가 엄청 밀려있고 음식은 늦게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하지 않아....

내가 조급 한 건가 (사실 그렇지만) 생각이 들었다.





창창을 만나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도시(?), 장화에 갔다.


장화는 거대한 석불이 있고, 공자사원 같은 게 있고, 대학이 있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배경이 된 곳- 이라는데


내가 느낀 장화는 


-루강보다 시원하다

-루강보다 나무가 많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신도시 느낌)

-루강보다 시원하다

-루강보다 맛집이 많다

-루강보다 시원하다


이 정도. 

대학이랑 도서관을 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국 캐임브릿지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장화의 관광지인 거대 석불을 대충 20분 만에 둘러보고

앰버가 '대만 미트볼 먹으러 가지 않을래? 너가 말한 영화에 나온 집이야ㅇㅇ'라고 하길래 따라갔다.

타이중에 가는 길에 내가,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소녀'라는 대만 영화의 배경이  장화래!라고 말했었는데

창창이 영화에 나온 식당을 구글링 해서 앰버에게 가자고 말했던 것. 


나는 창창에게 왕감동을 하며 그가 이끄는 허름한 식당으로 따라갔다.  

이 미트볼이 그 미트볼인 줄도 모르고...




충격적인 비주얼의 미트볼;

사실 그 전날에도 지우펀의 시장에서 이 음식을 봤다. 

먹어볼래? 하고 앰버가 묻길래 배부르다고 거절했는데

사실 생긴 게 비호감이라, 뇌수속에 뇌가 들어 있는 거 같아서 안 먹고 싶은 거였다.

그런데 맛집이라고 데려갔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놀란 기색을 감추고 먹기로 결정.





역시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엔 모르는 건가?

예상외로 무척 맛이 있었다.

겉은 감자떡처럼 쫄깃쫄깃하고 안에는 고기가 들었고 소스는 데리야끼맛

(감자떡은 싫어하지만. 근데 또 잘 먹었어.)


의외의 맛 발견에 대한 기쁨 + 대만의 맛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급기야 나는 까르푸 쇼핑을 할 때 냉동으로 된 것을  사오기도했는데 

(정식 이름은 rou yuan이다)


이게 캐리어 안에서 녹았다가 다시 집 냉동실에서 얼었다가, 냉장실로 옮겨갔다가, 

지금은 또 다시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다. 

언제나 먹을 수 있을지, 과연 그 맛은 잘 보존되어 있을지는 미지수.





자꾸만 뒤통수 등장하는 창창

그가 우리를 또다시 데려간 곳은 50년 전통의 주스집이다.

이젠 코코넛 밀크 먹으러 갈 거야- 하고, (더 이상 먹을래?를 묻지 않음) 

앰버와 창창이 앞장서 걸었다





허름한 외관이 보장하는 맛집의 퀄리티.

불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열댓 명 줄 서 있었고,

벽면에는 대만 대통령, 이동네 시장 등 유명인사가 가게를 방문한 인증샷들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코코넛 밀크도 별로 좋아하는 건 아닌데 나 또 너무 맛있게 먹었다 ㅠㅠ 

사실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게, 일반적인 코코넛 밀크에서 느껴지는 화장품맛이 전혀 없었기 때문.

앰버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가게들은 코코넛 밀크에 설탕이랑 물이랑 이것저것 첨가하는데

이집은 정말 코코넛+우유로 끝이라고.

음, 이건 마치 두부를 조리고 볶고 굽고 하는 것보다 그냥 생두부를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건가?




장화에서의 먹투어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타이중으로 갔다. 

차가 많이 막혀서 도착하니 밤이 되어 있었고, 우리의 또 다른 친구인 부부가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펑지아 야시장!

내가 구글링 했을 땐 대만 최대의 야시장 이랬는데, 앰버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명동과 홍대를 합쳐놓은 느낌의 펑지아 야시장에서 맛본 첫 번째 음식은 소시지 핫도그.

야시장의 한 길목에 똑같은 소시지를 파는 두개의 집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전날에 시펀에서 전통 소시지를 먹을 때 앰버가 콩으로 만든 소시지가 있다고 했었는데 

이게 그거였다. 

두 집 다 수십 명의 손님을 줄 세우고, 간판에는 어느 어느 텔레비전에 방영됐단 걸 계속 보여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두 가게 주인은 원래 한 가족.

같이 장사를 하다가 대판 싸우고 이렇게 나란히 가게를 내서 경쟁구도를 갖게 된 거라고.

여기나 저기나 돈이 섞이면 가족도 못 알아보는 게 마찬가지구나.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줄이 조금이라도 짧은 데에 서서 음식을 사먹는다고 한다.

어쩌면 두 가게는 돈을 두배로 벌기 위해 싸운 척 스토리를 만들고,

실제로는 몰래 수익을 공유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원래는 이 집 음식이 첫 번째 음식이 되어야 했는데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번호표 끊어놓고 다른 거 먹고 왔다.

조개를 삶아서(?) 후추 따위를 뿌려서 먹는 음식으로, 이날 먹은 음식 중 유일하게 느끼하지 않은 것.


대학 바로 앞에 있어서 홍대 느낌이 많이 나던 가게.

사람도 많고 더운데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인지 주인 아줌마는 내내 싱글벙글이었고

창창은 뭐 하나 먹지도 못한 채 회사에서 온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일상을 피해 도망 온 여행지였으나 이 곳 사람들에게 여기가 일상이었고

주말에도 업무를 처리하는 창창이 남일 같지 않아 씁쓸했다. 





길가다가 앰버가 (또) 사준 차계란

차를 우린 물에 껍질이 조각조각 난 계란을 넣어서 계란에 차의 향과 맛이 느껴지도록 한 음식인데

오무라이스잼잼에서 봐서 이미 알고 있던 음식이었다

계란 흰자에 껍질 모양대로 스크래치 난 건 좀.. 환공포증 유발로 혐오스러운데 

맛은 향긋한 계란 장조림? 꽤 괜찮았다. 





이젠 더 이상 대만 전통도 아니다.

감자에 베이컨과 치즈 등을 얹어서 나오는 음식





오징어 안에 고기랑 사라다같은걸 채우고 튀겨서 케첩을 뿌려주는 음식...


좀 많이 놀라웠다.

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이런 걸 먹는단게.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먹는데도 별로 뚱뚱하지 않단 것. 





먹투어를 이끈 Bubu

그녀는 음식 하나를 손에 잡든 채로 다른 가게로 가서 또 줄을 서는, 정말 위대한 여성이다.

이날 저녁 우리를 만나기 전에도 엄마랑 외식을 하고, 빵을 한 뭉치 사 먹고,

마지막에 집에 가는 길에 저 혼자서 코코넛 밀크까지 사마셨는데.

그런 식습관이 일상임에도 뽀얀 피부와 날씬한 몸. 이건 정말 사기다. 





나는?

이미 그 전날부터 너무 많이 먹어서 종일 배가 부른 상태였고, 

부부가 나를 하루 만에 만난 나에게 야 너 배 좀 봐 ㅋㅋㅋㅋ

이러고 비웃기도 했었다.

물론 내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이유는 술 때문이지만

이건 정말 불공평하다 ㅠㅠ 





또 한참을 줄 서서 먹은 닭고기

우리가 먹은 야식 가게들이 다 이렇다.

사람들이 엄청 줄을 서있고, 가게 앞에는 방송 출연 인증 영상이 반복 상영된다.

그런데 뭐 특출난 집이 인기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집 앞에 사람들이 줄 서서 먹고 있어서,

음식들이 정말 다 맛있는 건지, 아니면 여기 사람들이 그냥 많이 먹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제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부부가 또 줄을 섰다. 다코야끼를 샀다

ㅠㅠ





부부가 줄을 서니까 앰버가 그 옆집에 또 줄을 섰다.

너무 배가 불러서 한 입 먹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앰버 덕분에 먹은 이 팬케익이 

야시장에서 먹은 것 중 유일하게 역사가 있는 음식

무슨 맛인지 기억도 안 나는 게 좀 아쉽기도 하다.





타이중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오던 길. 

어두운 자정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앰버는 토를 했고, 

그렇게 우리의 스파르타 먹투어는 시큰한 토냄새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나 때문에 고생한 앰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왜 그렇게 토할 때까지 먹어댄거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게 나로 인한 것이므로 미안한 마음을 더 크게 갖기로.




그렇게,

더 이상 침도 못 삼킬 정도까지 먹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생각난 게


아, 망고빙수는 못 먹었구나! ㅠㅠ


뭐 이런 돼지가.....


빙수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대만에 왔으니 망고빙수쯤은 먹어줘야지 생각했는데

수없이 먹은 음식들 가운데 빙수가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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