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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Aug 19. 2015

혼자 하는 여행의 아이러니

[Taiwan, 2015.04.30 - 2015.05.04]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엄마의 도움으로 출발 직전에야 겨우 채운 트렁크를 끌고 나와 마을버스에 오른다. 버스기사가 트렁크를 들고 오르는 나를 기다려준다. 리무진 버스로 갈아타고 도착한 공항. 체크인을 위해 줄을 선다. 비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행 성수기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다. 맨 뒤에 서 있는 나와 주변인들을 직원이 다른 카운터로 안내해준다. 체크인을 하고 라운지로 들어가지만, 인터넷으로 한 달 전에 주문한 면세품은 줄이 너무 길어 인도받기가 어렵다. 다급해하던 차에 면세점 직원에게 양해를 구해 물건을 번호표 순서보다 빠르게 받는다. 그게 탑승 마감 5분 전.


마침내 비행기에 올라 담요를 받고는 특별식 주문을 확인한다. 온라인 예매할 때 미리 특별식을 주문하면 승무원들이 가장 먼저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길 없는 길, 하늘길을 파일럿이 어찌나 잘 운전해주는지 잠이 몰려온다. 건네받은 담요를 목 끝까지 덮고 얕은 잠에 빠진다.


두 시간 남짓 지나고 도착한 대만. 꿉꿉한 공기가 가득 찬 공항을 둘러보는데  한국말은커녕 영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환전소 직원, 승무원,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에게 물어물어 타이베이 메인역에 가는 버스를 찾아 탄다. 시내에서는, 트렁크를 끌고 가는 나에게 계단 아닌 길을 알려주는 웬 할아버지와, 숙소를 못 찾고 헤매는 나에게 구글맵을 켜서 (비록 잘못된 정보였지만) 길을 알려주는 젊은 커플까지 만난다.




혼자 떠난 여행.

그러나 호텔 체크인까지,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혼자 떠난 대만에서 혼자 하는 여행의 아이러니를 깨달았다. 나는 여행 곳곳에서 무력감을 느꼈고, 그 무력감은 특히 운송수단을 탈 때 커졌다. 원래도  자동차는커녕 자전거 하나도 운전 못 하는 나는, 여행은 물론 어디 가까운 곳을 갈 때에도 (걷는 게 아닌 이상) 다른 이들에게 완전히 기대야 한다. 혼자 어디든 잘 다닌다고 떵떵거렸는데, 사실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 



이 당연한 사실을 갑자기 떠올리게 만든 건 다름 아닌 Amber다. 그녀는 내게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스펀 지우펀에 가자고 호의를 베풀었고, 하루 종일 나보다 작은 그녀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탄 덕분에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앰버 등에 매달려 본 풍경.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나가 떨어질까 봐 두려워 앰버 허리만 꽉 잡고 달렸다. 달린지 30분 정도 지나서 카메라를 (소심하게) 들고 사진을 찍을 용기가 생겼고, 3시간 정도 지나서야 달리는 도중에 헬맷을 고쳐 쓰는 정도의 대범함이 생겼다.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의지해야 했다. 타이베이에서 스펀까지 가는 길은 약 한 시간 남짓. 그러나 우리는 간판을 잘못 보는 바람에 (압구정에 있는 "부산행" 표지판을 보고 부산 찾아 가는 것과 같은 해프닝이랄까) 예상보다 삼십 분은 더 걸려서 스펀에 도착했다. 게다가 가는 길도 한계령 뺨치는 구불구불 산길이고 비까지 오는 바람에, 마치 분노의질주를 체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얹혀가는 입장에서 나는 무서움과 미안함이 제일 컸는데, 운전하는 앰버는 깊은 빡침도 느꼈을 것이다. 본인이 제안한 것이긴 하지만 꿀 같은 연휴에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덩치도 거대한 한국인 친구를 등 뒤에 태워야 하는 것이 인간인 이상 짜증 났겠지.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나를 국제미아 만들 수도 있었다. 스펀에서 지우펀으로 가는 길, 우리는 주유소에 들렀다. 앰버와 부부가 셀프주유를 하는 사이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 천천히 손을 씻고 나오는데 등허리에 식은땀이. 나는 핸드폰과 지갑은 물론, 카메라까지 포함한 모든 짐을 앰버 오토바이 의자 밑에 넣어두고 유유자적 화장실을 갔던 것이다. 만약에 앰버가 나쁜 마음을 먹고 그대로 떠났다면? 말도 안 통하는 대만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실종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앰버는 나를 버리고 갈 만큼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고마운 앰버를 의심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나 쉽게 믿지 말라는 엄마의 조언이 떠올랐고. 뭣보다 그 순간 앰버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무력했을지, 암담했다. 앰버가 소크라테스의 화신이기라도 한마냥, 자꾸만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인지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까닭은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생각거리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행 첫날부터 대만의 오토바이에 관련해 쓰고 싶은 생각들이 있었는데, 그건 이런 자기반성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여행을 갔다 오고 한 달 넘게 지난 지금. 이제야 쓰는 여행기의 첫 번째가 이런 자기반성적인 글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치만 이런 아이러니한 깨달음도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겠지. 그냥 이 부끄러움도 쿨하게 써 버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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