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금도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neon Mar 28. 2016

adventure anyway

<멜리에스 일루션 - 에피소드>, 20160327

1.

나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던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유비무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성격, 말하기엔 남부끄러운 건강염려증 – 모험을 즐긴다고 하기엔 걸림돌이 많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적 경험과 관련한 모험은 종종 하게 된다는 사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소, 또 가끔은 심각하게 즉흥적인 성격 때문이기는 하지만.

발작적으로 뭐든 지르고 보는 즉흥성은, 이번 시즌 나를 '두산인문극장 2016:모험'의 에디터로 만들어버렸고, 나는 마치 파도를 타고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듯 <멜리어스 일루션- 에피소드>를 보기에 이르렀다. 노 한번 힘차게 젓거나 키를 좌로 우로 돌리진 않았으나 이 정도면 Adventure Anyway라고 할 수 있으려나.

모험이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는 것이라면, 이번 공연을 본 것은 그 의미에 120% 부합하는 일이었다. 수차례 읽어봐도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었던 공연소개 글 때문.


"<멜리어스 일루션-에피소드>는 일루션을 통해 모험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피사체를 촬영하여 이미지로 만드는 시네마토그래피를 마술적 관점에서 다뤘던 영화감독이자 마술사인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멜리에스의 스튜디오 건설과 그의 초기 영화에서 표현된 실험들을 다룰 예정이다."


라니. 난 난독증이 아닌데 도저히 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모험"하기에 적당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하여 3월 26일, 나른한 토요일 저녁에 나는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을 떠났다. 비록 지도를 잘 읽는 항해사는 아니었으나, 즐거운 시도였다. 그럼 된 거다.




2.

조르주 멜리에스는 무슨 모험을 했나?


약간의 불안과 함께 시작한 모험. 공연 시작 직후에, 그래도 내가 순항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대도 안 했는데, 마술쇼였기 때문. (제목이 Illusion인 것을 보고도 몰랐던 내가 바보) 본 작품은,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라는 20세기 초반 마술사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프랑스인에 대한 오마주라고 볼 수 있다.

멜리에스는 누구인가. 그는 20세기 초에 수십 편의 무성 흑백 영화를 만든 사람인데, 마술사라는 직업을 십분 활용하여 픽션이 가미된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달나라 여행 A Trip to the Moon(1902)>이라는 영화가 특히 유명한데, 2-3분짜리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에 12분 길이가 넘는 작품을 만들어서 본인이 연기도 했다고. 유튜브에서 몇몇 작품을 찾아보니 백 년도 더 된 작품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퀄리티가 좋고 재미가 있었다.


난 달나라여행보다는 이게 좋았다.

"The Indian Rubber Head" (1901)


멜리에스는 '스타 필름'이라는 세계 최초의 종합촬영소도 건립했고 5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으나, 1920년대 후반 이후 파산, 장난감을 파는 구멍가게를 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화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한데,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미니어처, 이중노출 같은 기술을 발견해 영화에 도입한 장본인이기 때문. 이는 (지극히 유럽인의 관점이지만) 항해사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의 모험적인 시도 덕분에 영화 예술의 세계가 발전했으니. 그의 삶을 곁눈질해보니, 두산인문극장이 잔뜩 어려운 말을 써가면서까지 조르주 멜리에스를 개막작의 소재로 삼은 것이 이해가 간다.




3.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의 모험은 무엇인가?

구성/연출의 EG. 이분 알고보니 마술사 이은결

팸플릿에 이 작품은 "일루션을 통해 모험을 시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사의 위대한 모험가인 멜리에스를 불러일으킨 것이 모험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보다는, 바로 '이 시점'에 멜리에스를 오마주 했다는 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모험이다.

지금이 어떤 시점이냐, 인스타그램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이 우연히 본 내 사진에 LIKE를 올리는 시점. VR기술을 활용한 게임이나 마케팅에 대한 기사를 하루에 한 번씩은 마주치게 되는 시점. 그리고 알고리즘으로 뭉쳐진 인공지능이 '전설 아닌 레전드'라 불리던 바둑기사와 대국해서 4:1로 이겨버리는 시점이다. 딱히 과학 발전에 비관적이지는 않지만, 기술의 진화와 반비례하게 철학, 종교, 예술의 영향력은 미약해지고 있다. 대신에 무기력과 불안함, 두려움은 기술의 발전 속도와 같은 빠르기로 자라나고 있다.  2016년의 오늘은, 바로 그런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 마술의 영향력 따위는,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요새 누가 마술을 본다고. 이 작품의 구성/연출을 맡은 EG의 글을 인용하자면, "마술은 영화와 인터넷의 탄생으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나만해도, 어릴 적 S본부에서 주말마다 방송한 '타이거마스크' 이외에 마술을 구경한 기억이 없다. 그러니 이 작품이 굳이 20세기 초반의 위인을 소환하여 마술쇼를 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모험을 했나. 아이러니하지만, 위에서 떠든 '바로 이 시점'이야말로 마술의 위력이 가장 필요한 때라 그러하다. 마술이란 본래, 모두의 상식과 당연한 이치를 전복시키는 것, 현실의 제약을 깨부수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마술을 가능하게 하는 게 눈속임일지라도, 그것이 품은 가치만은 진실되고 값지다.

더욱이 멜리에스는 마술적 상상력을 영화에 접목하여 영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모험가. 그의 작품들은 2016년의 눈으로 바라볼 때 조잡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속 담긴 모험정신만은 여전히 위대하다. 그것이, 이 시대의 무기력을 깨부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는. 언뜻 유행 지나간, 구시대 유물 속 모험심을 소환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변치 않는 새로움과 놀라움이 응축되어 있다. 한 시간 남짓 공연을 보는 동안, 나는 탄산 잔뜩 들은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양 수차례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짜릿함은 내 안에서 에너지로 소화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치 내가 마술사라도 되는 양 뭐라도 변화시키고 싶어졌고, 실제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상식과 한계를 전복하는 마술의 힘. 그리고 그 마술을 영화에 접합해 영화의 신대륙을 개척했던 조르주 멜리에스. 시대의 한계와 무기력을 이겨내고 모험하게 하는 원동력은 이처럼 마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20세기 흑백 영화처럼 새까만 무대 위에서, 그런 시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험을 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버전 헤드윅 봐도 괜찮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