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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Jun 06. 2017

작가의 Flot

김영하, <오직 두 사람>,  문학동네, 2017


"그의 계획은 빈틈없고 완벽했다. 단 하나의 아귀도 어긋남이 없이 딱딱 맞아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영어의 플롯은 음모로도, 그리고 구성으로도 번역된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1. 

작가 김영하가 자신의 두 번째 소설집 끝에 썼던 문장을 기억한다. 

"담배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관지로 빨려 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작가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따위 긍정의 말을 믿는 낙관론자일리는 만무하지만. 것보다는 '표적들을 향해 쏘아진 화살이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제대로 꽂히는 것'이 문학(인생)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이번 신작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난 그 어떤 책보다도 가장 담배에 가까운 소설집이 나왔다고. 작가가 바라고 의도했을 '더 독한 소설'이 써졌다고. 


⟪오직 두 사람⟫은 작가 김영하가 7년 만에 내놓은 다섯 번째 소설집이다. 그 말은 곧 세월호 사건 전후로 집필한 글을 엮어낸 책이란 뜻이기도 하다. 일곱 개의 단편에 고르게 퍼져 있는 절망감, 상실감, 패배감은 어찌 보면 불가피했던 일. 단편들은 뭐 하나 속 시원한 결말 없이 이른바 '출구 없는 방탈출 게임'처럼 답답한 상황에서 끝맺음이 이루어지는데,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현실이 이렇게나 잔혹한데 소설이 '아 잘 해결됐어! 끝!'이라고 끝난다면 그 배신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소설이 현실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현실에 대한 따뜻한 공감이든, 차가운 비판이든-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 해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직 두 사람> 속의 절망감과 담배 같은 매캐함이 고마웠다. 지독히 중독되어 읽었다.



2.

책을 읽기 전날 밤 tvN의 새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시청했다.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김영하가 이순신이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문학적으로 분석해봤다며 '주인공 캐릭터의 3요소'를 소개했다. (1) 고통을 받고 (2) 분명한 목표가 있으며 (3) 일생에 중요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순신이 그 세 가지의 조건들을 완벽히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 꽤나 인상적인 이야기라 ⟪오직 두 사람⟫을 읽으면서 작품 속 인물들을 3요소에 대입시켜봤다. 일곱 단편 속 인물들 중에 무매력 캐릭터는 없다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요소가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3요소 중 세 번째인 "일생에 중요한 기회"가 반드시 좋은 기회로 작용하진 않았단 것이다. 오히려 소설 속 인물들이 손에 쥔 기회들은 갈등과 문제를 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스포 방지를 위해 결과는 대충 썼다) 


<아이를 찾습니다> 

고통 = 마트에서 아이가 실종됨

목표 = 잃어버린 아이 찾기 

기회 = 아이를 잃은 지 11년 만에 아이가 되돌아옴

결과 = "네가 내아들이라니" + "당신들이 내 부모라니" → 또 다른 비극의 시작 


<인생의 원점>

고통 = 되돌아갈 곳이 없는 떠돌이의 인생

목표 = 인생의 원점이자 첫사랑인 인아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

기회 = 남편과 피 터지게 싸운 인아가 도와달라며 전화를 함

결과 = "불륜 주부, 내연남과 공모, 남편 살해 후 실종신고- 뉴스 헤드라인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나?" 


<신의 장난>

고통 = 가진 것 하나 없이 고시원 사는 삶

목표 = 좋은 회사 취업해서 고시원 탈출하고 성공하기

기회 = 신입사원 연수라고 방탈출 게임에 참가하게 됨

결과 = "힌트도 없고 탈출구도 없는 이 곳이 나의 일상이 되는가"


<알쓸신잡>에서 김영하는 소설가들이 글을 쓸 땐 저 3요소를 항상 염두에 둔다고 했다. 그 역시도 단편을 쓸 때 치밀하게 구성하고 설정했을 것이다. 저 별 볼 일 없는 인물들에게 매력이 담기도록, 그래서 독자들이 인물들의 갈등 상황 몰입해서 읽다가 마침내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되도록 말이다. 어쩐지 정신없이 반나절만에 읽어버리게 되더라니. 이렇게나 영리한 작가다.  

종종 김영하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다가 '작가가 넘나 천재라 글을 대충 휘휘 쓰는 것 같다, 정신없이 읽는데 남는 게 없다' 고 하는 평을 듣기도 한다. 개개인의 느낀 점을 옳다 그르다 할 순 없지만 딱히 공감은 안 간다. 그 '휘휘 쓰는', '정신없이 읽는', '남는 게 없는' 모든 게 작가가 의도한 것임이 분명하니까. (물론, 김영하가 넘나 천재란 말엔 5000% 공감을 한다) 



3. 

그래, 작가 김영하의 의도. 그가 또 어느 책의 말미인가 혹은 인터뷰인가에서 '책을 읽고 덮었을 때 아무 구절도 기억에 남는 게 가장 좋은 소설'이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책 속에서 좋은 문장 찾는 게 취미인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김영하의 소설을 읽다 보면 튀는 문장 없어 그의 치밀한 노력이 느껴진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의도인 거고 나는 또 나만의 독서법이 있기에, ⟪오직 두 사람⟫을 읽으면서도 금도끼 같은 구절 몇 개를 굳이 찾아내 여기에 적는다. 나로서는 이 수고로운 일을 하는 게 작품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방법인데, 혹시 김영하는 작품 속 구절들이 웹상에 돌아다니는 걸 보고 "이 책은 틀렸군", "나의 계획은 완벽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려나.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문학은,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난데없는 자리에 제대로 꽂히는 것'이니까. 본인의 실패한(?) 플롯도 이해하겠지. 





39.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 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166.

그의 계획은 빈틈없고 완벽했다. 단 하나의 아귀도 어긋남이 없이 딱딱 맞아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영어의 플롯은 음모로도, 그리고 구성으로도 번역된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247.

나는 우울을 믿어. 인간은 천둥이 치고 비가 퍼붓는 궂은 날씨에는 울적하도록 진화했어. 가만히 동굴에 틀어박혀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게 유리하거든. 에너지를 아끼면서 말이야. 인류가 이렇게 진보한 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과오에 집착해온, 사실 나 같은 우울증 환자들 덕분이야. 그들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 스스로를 과신하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남은 거야. 



270.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 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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