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

문득, 내가 게임을 왜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by 로마

내가 마지막으로 정말 기억에 남을 만큼 게임에 푹 빠졌던 것은 석사 논문 막바지 때였다. 논문을 쓰기 시작할 무렵 이런저런 원인에 의해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때 기분전환을 할 겸 시작했던 마인크래프트 덕분에 졸업을 미뤄야 할 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다. 다행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무사히 석사를 졸업한 직후에는 같이 졸업한 형과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잠깐 했다. 사실 LoL은 그 이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섣불리 시작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대학교 학부생 시절 이 게임의 원조격인 카오스를 너무나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승부욕 또한 무척이나 강해서 교내 대회까지 나가서 기어코 준우승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정도의 실력이면 LoL을 하기에 적합한 게 아닌가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정도로 푹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꺼려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졸업 후에 기분 전환도 할 겸, 또 같이 졸업한 형과도 시간을 보낼 겸 가볍게(?) 시작해보았다.


역시나 카오스로 단련된 나의 손과 꾸준히 LoL을 해온 형의 실력이 합쳐져 초반에는 그럭저럭 선방하며 즐겁게 게임을 했다. 그러나 역시 곧 온라인상에서 익명 뒤에 숨은 사람들의 온갖 신경질적인 반응들과 욕설들로 인해 매 게임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집중 상태에서 임하게 되었다. (논문을 이렇게 집중해서 썼으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이기면 다행이지만 질 경우 욕이란 욕은 다 듣고 같이 게임하던 형과도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헤어지게 된다. 근심 걱정이 별로 없던 학부생 시절이었다면 밤을 새워가며 내 실력을 늘렸겠지만, 취업 준비도 해야 했던 당시의 나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하겠다고 형한테 통보했다.


그런데 의외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형도 몇 년 동안 해온 LoL을 그만뒀다고 나한테 알려왔다. 다소 놀란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게임은 즐거우려고 하는 건데, 이 게임은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지더라.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초반의 몇 판을 제외하고 LoL을 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아니, 이때까지 해온 모든 게임들 중 내가 정말로 '즐겁게' 한 게임은 뭐였을까?


사실 형과 이 얘기를 나눌 당시에도 나는 혼자서 몰래(?) 디아블로3를 하고 있었는데, 이 게임은 또 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즐겁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하는 느낌이었다. 이 사실을 나 스스로 깨닫고 나니, 이른바 현타가 세게 왔다.


그렇게 나는 허무하게 게임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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