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침내 개발을 좋아하는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인사이트 아웃>처럼 나의 근간이 되는 캐릭터들이 몇몇 있는데 (뭐야 이렇게 말하니까 다중인격 같잖아) 그중 하나 까칠이를 소개할까 한다. 자존심이 엄청나게 세고 자신감이 넘치며 어린아이처럼 세상 모든 것에 쉽게 흥미를 느끼는 아이가 하나 있다. 이 까칠이 덕분에 다양한 능력치를 일정 수준 이상 개발할 수 있었는데, 다루기가 정말 까다롭지만 나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캐릭터다.
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이 아이 덕분이었고 뭣도 모르는데 덜컥 프로젝트를 맡은 것도 이 아이 때문이었다. 덕분에 항상 한계치를 넘어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근데 항상 잘 극복하던 한계를 넘기지 못했던 적이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자존심이 센 까칠이는 크게 상처를 받고 내 마음 깊숙이 숨어버렸다. 증말 드럽게 까다로운 어린애이다.
그래서 스스로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기까지 계속 기다렸다. 개발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칼럼을 읽기도 하고 강의도 듣고 뉴스레터도 꾸준히 읽고 그러고 있었는데, 최근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빛을 잃었던 까칠이가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그 흐름은 이렇다.
개발을 좋아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어떤 개발자분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개발이 천직이다"라고 하셨다. 나도 한때 저런 때가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게 과거형이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참 부러웠다. 나에게도 해가 뜰 때 검은색 화면을 보고 잠시 눈을 떼면 해가 져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희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설명할 수 없으며 굉장히 몰입하며 살아가는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문득 그 생각이, 그때의 그 기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회사에서 개발자분들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데 뭘 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자극이 된다. 전에는 그냥 보기 싫었던 개발이었으나, 개발자분들이 집중해서 일하는 보니 지금은 "개발하고 싶다. 뭐라도 검정화면에 두들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배우려고 오는 사람들
회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민정님이 봉사활동을 한다고 종종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근데 어느새 눈을 뜨고 나니 그 그룹에 가있더라. 거기에는 한국어를 배우기위해 밋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나는 영어를 쓰는 밋업 자리에 갈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항상 도망쳐왔다. 잘 모르는 언어를 쓰는 집단에 오는 건 엄청난 두려운 일이며, 못 알아듣는 상황이 계속 오면 엄청난 정신력이 깎이는 데다 이 자리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는 모습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는 정말 파워풀하며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를 뿜뿜하고 있었고 나는 그 에너지를 고이 잘 받아왔다. 이날 저녁은 이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잠도 잘 오지 않더라.
나의 까칠이는 이런 멋진 사람들을 보니 자신도 빛을 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마침내 스스로 걸어 나왔다. 참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5개월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