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째서 서로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신하는가
철학과 수업중 인지발달이론 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나머지는 다 기억 저편으로 떠나버렸지만 그때 꽤 인상깊었던지 아직까지 기억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피아제의 대상영속성에 관한 실험인데, 여기서 대상 영속성이란 물체 혹은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져도 그 물체는 계속 존재한다고 믿는 능력이다. 이러한 대상 영속성은 태어날 때부터 짠하고 생긱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10~11개월의 기간을 거쳐 점차 성숙하면서 생겨나는 후천적인 능력이다. 생후 6,7개월이하의 아기 눈앞에서 장난감을 천천히 뒤로 숨겼을때, 아기들은 장남감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더 이상 그 물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때에는 눈 앞에 보이지 않음 =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음 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2살정도되면 아이는 장난감을 담요 속에서 베개 아래에 놓은 장난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때는 이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
오후 3:00 옆자리에 있어야할 직장동료가 오랜시간동안 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들까?
아직도 안들어왔어? 어디가서 농땡이 치고있는거 아냐?
이러한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음 = 일을 하지 않음 공식하에 성립이된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아직 이러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직장을 다녔을 때, 사무실이 너무 답답해서 2층의 휴식공간에서 자주 일을 하곤 했다. 단지 휴식공간에서 일이 더 잘되서 올라왔을 뿐인데, 스스로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 불편히 일을 하다 얼마 안되서 다시 내려가곤했다. 사무실 자리에 앉을때까지 왠지 모를 눈치를 봐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난다.
처음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시작할 때는 아직 기존의 공식이 잔존해있었기때문에 상당히 불안하였다.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팀원들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건가?
팀원들과 효과적인 일정관리 툴을 통하여 서로의 일정을 체크하고, 업무 진행도를 체크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얼마든지 진행도를 속일 수 있었다. 가령 실제 업무 진행도는 10%인데 일정체크는 59%로 체크할 수 있었다. 나중에 한번에 몰아서 정해진 날짜까지 체크하면되는거 아닌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나 스스로 업무를 쪼게하는 몇가지 포인트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의 업무공유시간이었다. 우린 온라인 미팅을 할때 서로의 업무를 공유하고 시작하는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때는 공유할 것이 없고 (당연하다 일을 안했으니) 팀원들의 앞선 화려한 공유로 내차례가 될수록 부담이 배로 다가온다. 이런 것이 싫어 일을 제대로 하게 되고 이미 정해놓은 일정을 최대한 잘 지키려고 스스로 압박을 가했다. 사실 이게 가장 컸는데, 나머지 하나는 팀원들이 나에게 주는 믿음이었다. 내가 일음 함에 있어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던 부분이다. 자신이 일정을 스스로 정하도록하고, 또 그 일정을 믿어주는 것. 팀원들이 나에게 주는 믿음이 너무 감격스러워, 나 스스로 그 믿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을 하게 되었다. 믿음을 한번 잃으면 결코 되찾는것은 쉽지 않다는걸 알기에. 그렇게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어떠한 때에 가장 효율이 나는지 또 반대로 어떨때는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지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처음에 망나니처럼 날뛰던 나를 점점 잘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나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으며, 일을 하면 할 수록 나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직장을 다니며 깨닫지 못한, 여러가지에 가려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이 믿음은 내가 그러하다는 것을 전제로부터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음 = 일을 하지 않음 공식은 깨진지 오래고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음 공식이 다시 세워졌다. 그만큼 더욱 성숙해졌다는 뜻일까.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처럼 후천적으로 터득한 능력이다. 직장에 계속 있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큰 인지는 애초에 디지털노마드는 이러한 신뢰가 바탕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팀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디지털노마드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여담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오히려 노마드의 삶을 시작하고나서 업무시간이 더 늘었다! 우선 나의 조각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신경쓸것이 전혀 없어졌다!!
나는 아침 9시에 사무실에 도착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점심시간을 빼면 하루에 8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미팅도 해야하고, 고객도 만나야 하고, 친구들과 잡담도 해야하고, 커피를 마시느라 들락날락 거리기도 해야하고 개인정인 용무도 봐야한다_임백준의 대살개문중 한 구절
전에도 재미있었지만 요새는 정말 즐겁게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