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ondela - Pontevedra (22.5km)
Redondela - Pontevedra (22.5km)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일찍 시작하는 순례길
아침 일곱시
스페인은 포르투갈보다 해가 늦게 뜨고 해가 늦게 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손을 잡고 걷습니다
ㅎㅎ 신혼 10일차니까요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산티아고가 90km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어떤 마음일까요?
우리가 아침을 시작할 때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듯한 스페인의 청년들.
제 기억에 스페인의 클럽에서는 음식이 뷔폐처럼 나왔었는데...
시간이 되면 흥이 넘치는 스페인의 클럽도 함께 가보자고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에는 유독 독일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랑스길에도 많았지만 여긴 더 많은 것 같아요.
가족끼리 다 함께 걷는 순례길
아이와 엄마가 단 둘이 걷는 순례길
노부부가 걷는 순례길
나홀로 순례길
오늘 아침 길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는 왜 이길을 걷냐는 나의 물음에
그저 두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포개어 올려두었습니다.
'내 마음이 이 길을 걸으라고 시켰어'
'내 마음이 이 길을 걷고싶었어'
그런 뜻이었을까요?
모두가 다른 이유로 시작하지만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걷습니다
함께 걷는 사람이 길 위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Camino De Santiago
스페인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라지만
중요한 단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요'
아침 일찍 문을 열었던 포르투갈의 카페와 달리
스페인의 카페와 바르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어제 사둔 과자를 꺼내
고양이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조금 딱딱하고 조금 더 짠 꼬깔콘 맛이 나는 과자였어요.
까미노 길 위의 사람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마을을 지나다
커피 한 잔이 간절해 질 때쯤
길가의 카페를 만났습니다.
누군가 길 위의 순례자를 위해 맛있는 아침을 제공하고 있었어요
과일부터 쿠키, 초콜렛, 커피, 조가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격이 책정되지 않았어요
도네이션(Donation). 기부제 입니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고 원하는 만큼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우리는 그 곳에 커피 두 잔의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내려놓고 왔습니다.
우리의 기부가 누군가에게 다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되겠지요
길을 걷다가 한 사진작가를 만났습니다
스페인의 사진작가인 그는 우리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고
즐겁게 모델이 되어주고 난 뒤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사진을 어디서 볼수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웹사이트는 따로 없다며, 메일로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카메라로 들여다 본 우리 둘의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난 뒤
HO와 저는
사진을 받으면 크게 인화해서 집에 걸어두자고 약속했습니다.
잊지못할 추억이 되겠죠.
길 위의 풍경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저 끝없이 이어진 길을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 뿐이지만
걷다보면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풍경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집에 놓인 화분이 그렇고
길가에 세워진 허수아비가 그렇지요
길에서 또다시 만난 아저씨는
우리에게 두 갈래의 까미노 길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곧 걷다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쉣!'이라며 왼쪽 길로 가라고 했습니다. 왼쪽 길이 조금 더 길지만 아주 멋진 길이라고 했어요.
그의 영어가
스페인어와 뒤섞여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다음번 가게의 하이디 복장의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해석은 정확했어요. 왼쪽 길이 400m 더 길지만 더 멋진 길이다! 왼쪽 길로 가렴.
도장을 받고
인사를 하고
80센트에 구매한 사과를 반 잘라 나누어 먹었습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었지만
우린 계속 걸었습니다.
오늘은 숲길이 많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순례길을 관광하고 있는 관광객들도 만났어요.
관광버스를 타고 근방으로와서 순례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버스를 타고 싶으면 타고 아니면 걷는 그런 코스인 것 같았습니다.
관광버스가 마을마다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의 가방은 가벼웠고 그들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어요
조금은 부럽기도 했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한 발 한 발 이 길을 걸어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오늘도 길을 걸었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까미노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도저히 배가 고파 걷지 못할 것 같을 때
바르에 들렀습니다.
사실 몇 개의 카페를 지나쳤던 이유는
HO와 저는
빵이아닌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민하다 고른 마트표 파스타
따뜻하게 데워먹는 건줄 알았는데 냉파스타였습니다.
생각보다 맛은 괜찮았어요 :)
길을 걷다 정말 배가 고프면 사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새내기 크리에이터를 꿈꾸라며 HO에게
고프로를 건넸습니다.
무려 60만원이나 주고 산 카메라인데 가방에서 방치되게 놔둘 순 없었어요.
HO는 고프로를 들고 길을 걸었지만 카메라 화면은 전혀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는 자꾸만 바닥만 향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크리에이터가 되기는 틀렸나 봅니다.
두 갈래의 길
길을 걷다보면 종종 두 갈래의 길이 나옵니다
아까 아저씨가 말해준 길이 이 길인가?
확실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를 만나고 1시간정도 지난 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C. Complementario 라고 적힌 우회로 길과 본래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었습니다.
우린 우회로 길을 택했어요
C. Complementario
순례길의 우회로 길.
우회로 길은 기존 순례길보다 조금 더 긴 경우가 많지만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펼쳐진 숲길
오르막이 전혀없는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폭포도 있었고, 계곡도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우린 멋진 풍경을 보며 힘차게 1시간여를 더 걸어보았습니다.
오늘의 먹방, Badiana tapas
어제의 만족스러운 식사 이후
우리는 맛있는 식사에 대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까미노 길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그저그런 음식만 먹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걸 깨달았거든요
구글 맵 검색으로 근처의 맛집을 찾았습니다.
타파스 바.
그리고 4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했어요.
(스페인의 대부분의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 중간에 있어요. 구글 맵에서 restaurant 라고 검색하면 평점과 영업시간이 동시에 뜹니다)
서둘러 도착한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오늘은 메뉴판을 보는 대신 구글에 올라와있는 메뉴사진 캡쳐해서 보여주며 주문해 보았습니다.
어려운 스페인어를 해독하는 것 보다
훨씬 간편하더라구요!
대포항의 새우튀김 같았던 새우튀김이 나왔고
HO가 좋아하는 고기가 나왔습니다.
앞으로 매일매일 고기를 먹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왔어요
사이드메뉴로 감자가...
밥 두 공기 분량으로 나왔습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고기보다 감자를 더 많이 먹었어요
그리고 대망의 오늘의 베스트메뉴!
타코입니다... ♡
새빨간 무언가가 간절히 먹고싶었던 저는 타코를 주문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
아보카도 소스와 함께 환상적인 맛을 선보였습니다.
다먹고 난 뒤 계산서.
맥주 한 잔과 와인 한 잔의 가격이 포함이 되어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왠일인지 모르겠지만 까미노 길에서는 이렇게 신기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납니다.
이걸 우리들은 까미노 매직(Camino magic)이라고 불러요
Acola Hostel
오늘은 조금 깨끗한 곳에서 자고싶어서
무려 1인당 20유로를 내고 호스텔에 왔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우리만을 위한 숙소가 40유로였는데 스페인에서는 10명이 같이자는 방이 40유로네요 ㅎㅎ
매일 5천원짜리 숙소에서 잠이들던 HO는 이제는 10만원짜리 방은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합니다
깨끗하고 기분좋은 호스텔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빨래가 다 되면 거리를 구경해 볼 생각입니다 :)
길을 걷고 있는 모두에게 행복이 가득하길!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