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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클로이 Jun 25. 2020

산티아고 포르투갈 순례길 8일차

adron - Santiago De Compostela  

순례길 8일차 Padron -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날. 우리는 오늘 산티아고로 갑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스페인에는 비가 내렸고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데카드론의 방수자켓을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나란히 걸었어요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로 가는 마지막



오늘도 길 위에는 어김없이 예쁜 풍경들이 있었고



알 수 없는 글귀가 적힌 표식도 있었습니다 


2번 포스터는 저렇게 항상 훼손이 되어있었다는...


스페인은 요즘 총선이 한창이라

마을 곳곳마다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붙어있어요!


HO는 기호 2번을

저는 기호 1번을 당선자로 꼽았습니다.


우린 한국으로 돌아가면 

누가 당선되었는지 확인해보자고 했어요.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다른나라 정치에 관심을 갖게되고



눈을 마주하고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이 곳은 


산티아고 가는길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뜨기 직전이다
-파울로코엘료, 연금술사





비가 점점 더 억수같이 내렸고



HO와 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저 멀리 뒤쳐지는 저를 보고 


HO는 왔던 길을 돌아와 제 손을 잡아끌고 걸어갔습니다 



마지막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아주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질질 끌려가게 되었네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지막 5km를 남겨두고 




우린 길을 잃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아무리 걸어도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엔 고속도로 위까지 걷게 됐어요!!! 


이 길이 아닌 것만 같았지만 구글 지도에서 이 길로 가라고 해서 계속 갔는데 

알고보니 찻길이었어요 ㅎㅎㅎㅎㅎ



우릴 따라 걷던 두 명의 독일 할머니도 

덩달아 길을 잃었고 



마지막 5km를 남겨두고 길을 잃었다는 사실에 

뭔가 웃기기도 하고 망연자실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찾은 표식



결국 우린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다시 되찾은 까미노 길 위에서 독일 할머니는 



"한국에선 아우토반 위를 걷는게 허용이 되어있니?

너희가 고속도로를 따라 걸어서 너무 놀랐어!!"


라며 크게 웃었습니다. 


괜히 우리 때문에 함께 길을 잃은것만 같아 미안해져서 우리도 크게 웃었어요






그 이후로도 산티아고 대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 추워 찾아 들어간 바에서


밥알만 있었던 리조또


난생 처음보는 형태의 리조또를 먹었고



HO의 비상식량인 담배는

비에 젖어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애써 웃어봤지만 웃어지지가 않았어요! ㅋㅋㅋ 





비를 맞으며 길을 걷다가 

HO에게 파울로코엘료의 연금술사 책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HO, 연금술사 책 읽어봤어?"


"아 그거 니가 4년전에 사줬는데 아직 기숙사에 깨끗하게 놓여있어^^;;; "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 사람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어디론가 떠나는데 대부분 중간에 포기를 해. 그런데 사실 보물은 사람들이 포기하는 그 지점에서 딱 한 번만 더 시도하면 되는 자리에 언제나 있었어" 



"그럼 우리의 보물은 산티아고야?"


"그런거지.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와.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 뜨기 직전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비와 시련은 당연하게 예견된 일이었어! 우린 곧 보물을 찾게될거야" 




산티아고 대성당 도착



진흙과 비로 뒤덮인 등산화와

발목 / 무릎보호대의 힘으로 


한참을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7시간을 비를 맞고 걷고난 뒤였어요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던 전 

애써 담담한 척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은 사람들은


그 곳에 도착하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 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행복감이나 슬픔을 느끼게도 하는


산티아고 대성당.




재빠르게 영광의 사진을 찍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오래도록 잠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만 같은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 지극히 평범한 하루라는 것을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은 

마지막이 아닌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증서



다음날 아침 

지나치게 화창한 날씨에 



우리는 굉장히 당황했고 ㅎㅎㅎㅎ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순례길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받으러 갔어요 


순례자 증서

순례길을 100km이상 걸은 순례자에게 발급하는 증서로 크레덴시알(순례길 위에서 도장을 받을 수 있는 순례자 여권)에 찍힌 날짜와 도장을 확인한 뒤 발급해준다. 증서는 두 종류로 무료로 발급되는 증서와 실제 걸은 거리가 표기된 완주 증서가 있다(3유로) 


30분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나란히 순례자 증서를 받았어요! 

이로써 우리는 부부가 되어 처음으로 무언가를 함께 해내게 되었습니다. 


좋은 날씨 덕분인지 기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


증서를 넣을 수 있는 빨간통 각각 2유로  



눈부셨던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자전거 순례자들


완주를 축하하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보았고



우리는 

어제 못다 찍은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HO에게 포즈를 취하라 했더니

순례증서로 무언가를 때리는 듯한 포즈를 취했고



배낭을 매고 사진을 멋지게 찍어달라 했는데



제가 받은 건 이런 사진이었습니다... 


우린 멋짐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라며



사진은 포기하고 맛집을 찾아 떠났습니다





나의 산티아고, 나의 신혼여행



그렇게 8박 9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이 끝이 났습니다 :) 



떠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던 우리들의 신혼여행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 대신, 우리에게 가장 잘 맞은 옷을 찾아 떠난 덕분에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희의 순례길을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신 많은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ㅡ^



함께 속도를 맞추어 걸었던 까미노를 기억하며


삶의 발걸음도 조금씩 맞추어 가며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나의 산티아고, 나의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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