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처음만나 내가 스물아홉이 될 때까지 우린 4년간 연애를 했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회사도 직업도 스스로의 삶도 모든 것이 안정된 사람.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스물다섯에 카페를 운영했다. 내 이름으로 된 카페는 아니었지만 전체 매장운영과 관리를 내가 했고 상권이 무너지면서 카페도 같이 망했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내 나이 때에 갖춰야 하는 것들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렇게 4년, 나도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마케터’라는 내 직업도 생겼다. 4년을 만난 그와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하게 됐다. TV나 신문에서는 점점 낮아지는 결혼율과 출산율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가장 행복해야하는 시기에 나는 가장 고민에 휩싸였다.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게 맞을까? 라는 고민보다 ‘결혼해서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결혼해서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컸다. 어릴 적부터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해야 하는 사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몸으로 뭐든지 부딪쳐보고 직접 경험해야 하는 사람. 그래서 덜컥 겁이 났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릴 것만 같았다.
사실이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이제는 아이의 엄마가 된 대학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은정아, 갓난아기는 말이야 – 네가 돌보지 않으면 그냥 죽어! 24시간 눈을 떼면 안 돼. 이제 막 결혼을 하려는 네게 이런 말을 해서 진짜 미안한데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 그걸 몰랐어.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주지 않았거든.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만약에, 아이를 낳을 거라면 알고 낳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가장 힘든 순간을 가져오기도 했거든”
결혼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는 많은 여직원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던 무지한 내가 떠올랐다. “다들 왜 회사를 그만 두는 거지?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 일하는 게 아닌데! 일하면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결혼하더라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지!”
막상 결혼이 현실이 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내 손으로 기르고 싶은 사람이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눈앞에 현실이 펼쳐졌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아픈 상황. 남편과 내가 모두 회사에서 바쁜 날. 눈치를 보며 연차를 쓰고 그마저도 하지 못해 마음아파 울어야 할 많은 날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서로에게 날카로워지는 어떤 순간.
과한 걱정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딩크족을 선언하며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까? 돈을 조금 더 적게 벌더라도 지금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는 없을까?’
결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을 때 즈음 사실은 회사에서도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과의 신뢰가 무너지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퇴사를 한 뒤에 다른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다. 회사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던 시기.
그렇게 나는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