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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Sep 30. 2015

10. 외로움

인간이 가진 가장 집요한 에너지


<너, 외롭구나>라는 책에서 그러더라. 인간이 가진 가장 집요한 에너지가 다름 아닌 외로움이라고. 희망과 욕망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외로움이라고. 사람들은 외로워서 언어를 만들었고, 외로워서 도시를 건설하고, 외로워서 사회를 이루고, 외로워서 도로와 뱃길과 우편과 전화와 인터넷을 만들었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도 다 외로워서 그런 것이라고. 한편으론 외계 생명체를 찾겠다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도 하고, 인간의 역사는 외로움의 에너지로 돌아가고 있다고.



외로움은, 외로울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아무리 털어내도 자꾸만 쌓이는 먼지 같아서 깨끗이 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샌가 또 다시 곁에 와서 '어이- 이봐, 나 왔어'하고 내 어깨를 두드리곤 한다. 아마도 평생 나와  함께할 것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집요하고 끈질기게 따라 붙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이 녀석 하고 좀 사이좋게 지내야 할 텐데...






독일인 여행자가 알려준 대로, 차 맛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좋았다. 평소 홍차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지만 이 날만큼은 예외였다. 뜨거운 물을 부탁해 연거푸 우려 마실 정도였으니. 혼자서 오후의 홍차를 즐기고 있자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 지금 외롭구나…. 그런데 어쩌면 이건 건강한 마음 상태가 아닐까? 외로움을 느낀다는건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다는 것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고,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다는 것일 테니까. 그러니까 외롭다는 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아닐까. 찻주전자가 서서히 비워지는 동안 창 밖으로는 홍차처럼 붉은 빛의 태양이 조금씩 조금씩 강 쪽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외로움의 에너지로 외로움을 조금 털어낸 오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야! 밥은 먹었어?"
그럼. 한국은 지금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라나는 잘 있어?"
완전 잘 있어
"라나가 나 안 찾아?"
응. 안 찾아
"이런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라구!"



전화를 끊고 나니 풋-하고 웃음이 났다. 외로워도 슬퍼도 참 꿋꿋한 나의 고양이, 라나. 누군가 그랬었지. 사랑이란 상대방을 가볍게 해주는 것. 짐 지우지 않는 것. 자유롭게 해주는 거라고. 뭐, 쫌 서운하긴 하지만 왠지 든든하다. 덕분에 버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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