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작업실

나만의 작은 우주를 찾아서

by 노는언니


내게 허락만 된다면 남의 작업실 구경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서점, 공원, 시장보다 더 내 눈길을 사로 잡는 장소는 작업실! 그러니 길을 걷다 누군가의 작업실이 눈에 띄면 염치 불구하고 잠시 기웃거리게 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세계에 대한 로망이랄까. 그 앞에선 솜사탕 앞의 어린 아이가 된다.


작업실이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장소로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무언가가 꼬물꼬물 탄생하는 창조의 공간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곳을 ‘작은 우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린왕자의 소행성처럼. 화산은 자주 청소를 해야 하고 바오밥 나무가 별을 뒤덮지 않게 수시로 뽑아줘야 되고 장미도 돌봐주어야 하고 해질 때면 조금씩 의자를 옮겨가며 노을을 감상하는 등 매일 무언가를 하게 만들었던 소중하고 특별한 공간. 그만의 작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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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작업실의 로망!


정확하게는 ‘나만의 공간’을 꿈꾼다. 지붕아래 다락방 같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그렇다고 그 안에서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책을 읽거나 멍 때리거나 음악을 듣는 등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은 나에게 숨 쉴 여유를 준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름표를 달고 불쑥불쑥 찾아 든다. 학업, 숙제, 취직, 결혼, 회사, 스트레스, 관계, 역할, 책임, 가사, 육아 등등. 별은 어느새 포화상태가 되어 버린다. 바오밥 나무가 별을 뒤덮지 않게 해주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에 공명하는 작업실을 만났으니,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그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한다.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21세기 도시인은 숨어 있을 공간을 꿈꾼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만을 위한 지구 위 단 하나의 공간, 작업실. 텅 빈 우물 속에서 제발 조금씩은 미쳐버려 달라고. 다만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작업실은 삶의 다른 가능성을 향한 통로는 아닐까? 하루 24시간이 나의 것이지만 정작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람과 부딪히고 일에 얽히고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나를 들여다보기는 커녕 배터리가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 된다. 이럴 땐 어딘가에 나를 숨기고 잠시 동안 두문불출하고 싶은 갈망이 생겨난다. 세상과 차단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만, 홀로. 고요히. 존재하고. 싶어진다. 밤 하늘의 별들이 저마다 홀로 반짝이듯이.


그러기 위해선 작업실 같은 곳이 딱인데. 하지만 도시에서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심적으로도 망설여진다. 딱히 작업할 것이 없는 나처럼 '멀쩡한' 사람들은 더더욱.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라지만 솔직히 멍 때리기 위해서 월세를 주고 작업실을 마련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러니 잠시라도 떠나야 했다. 나만의 작은 우주를 찾아서. 어쩌면 작업실과 여행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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