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낙타

시간이 필요해

by 노는언니


이따금씩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카페를 찾는다. 커피때문에 카페에 가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다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제 3의 장소이자 익명의 공간으로 혼자여도 좋은 둥지가 되어준다. 드르르륵. 커피를 가는 소리가 살짝 귀에 거슬리긴 하지만 참을성에 대한 보답으로 구수하고 달큼한 커피 향이 어느새 코에 와 닿는다. 주위는 사람들의 수다로 인한 작은 소란스러움으로 술렁거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사람. 잡담을 나누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멍 때리는 사람.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서로 개의치 않으면서 저마다 뭔가를 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도시 속의 작은 섬.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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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상한다. 나만의 작은 섬을 꾸려볼까? 하지만 섣불리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금전적 요인은 제쳐두고서라도 나라는 사람은 일단 진득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장사의 잘됨과 못됨과는 상관없이 처음 몇 달간은 아마도 신나 하겠지. 하지만 한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 바다 건너 새로운 육지를 꿈꾸느라 심신이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보따리를 싸는 거다.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을 뒤로한 채. 나는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낙타같은 사람이니까.




집 놔두고 왠 카페? 커피, 음악, 노트북, 책상까지 집에도 있을 건 다 있으니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작업(?)은 가능한데. 집 안을 휙 둘러 본다. 빨래 통에는 세탁할 옷가지들이 가득하고, 거실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먼지들이 굴러다니고, 부엌 한 켠엔 분리 수거해야 할 쓰레기들이 돌탑처럼 쌓여 있다. 이런 상태에서 작업은 무슨. 앉아서 유목은 무슨. 산다는 건 끝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고 또 쌓이면 또 닦고의 반복이라 했던가. 청소, 빨래, 요리 등 일상의 일들은 소중하지만 동시에 은근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요한다. 어쩌면 이런 일상에 얽매여 그럭저럭 세월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지 않고도 살아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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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왠지 잃어버린 것만 같은 시간을 찾고 싶을 때 나는 새로운 오아시스를 향해 어딘가로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정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푸르스트는 자신을 찾기 위해 방에서 칩거하며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을 드리우고 홀로 고독과 외로움을 삼키며 글을 썼다고 하지만 나는 여행을 택한다. 읽고 싶은 책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한 귀퉁이에 이렇게 씌여 있는 책이었다.


그대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아무도 그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도 그 무엇으로 그대를 위협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 어떤 걱정거리로 그대 마음을 흔들지 않을
시간을 가져야 한다.


떠나는 나에게 툭툭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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