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필요해
이따금씩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카페를 찾는다. 커피때문에 카페에 가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다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제 3의 장소이자 익명의 공간으로 혼자여도 좋은 둥지가 되어준다. 드르르륵. 커피를 가는 소리가 살짝 귀에 거슬리긴 하지만 참을성에 대한 보답으로 구수하고 달큼한 커피 향이 어느새 코에 와 닿는다. 주위는 사람들의 수다로 인한 작은 소란스러움으로 술렁거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사람. 잡담을 나누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멍 때리는 사람.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서로 개의치 않으면서 저마다 뭔가를 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도시 속의 작은 섬.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
나는 상상한다. 나만의 작은 섬을 꾸려볼까? 하지만 섣불리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금전적 요인은 제쳐두고서라도 나라는 사람은 일단 진득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장사의 잘됨과 못됨과는 상관없이 처음 몇 달간은 아마도 신나 하겠지. 하지만 한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 바다 건너 새로운 육지를 꿈꾸느라 심신이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보따리를 싸는 거다.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을 뒤로한 채. 나는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낙타같은 사람이니까.
집 놔두고 왠 카페? 커피, 음악, 노트북, 책상까지 집에도 있을 건 다 있으니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작업(?)은 가능한데. 집 안을 휙 둘러 본다. 빨래 통에는 세탁할 옷가지들이 가득하고, 거실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먼지들이 굴러다니고, 부엌 한 켠엔 분리 수거해야 할 쓰레기들이 돌탑처럼 쌓여 있다. 이런 상태에서 작업은 무슨. 앉아서 유목은 무슨. 산다는 건 끝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고 또 쌓이면 또 닦고의 반복이라 했던가. 청소, 빨래, 요리 등 일상의 일들은 소중하지만 동시에 은근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요한다. 어쩌면 이런 일상에 얽매여 그럭저럭 세월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지 않고도 살아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면서.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왠지 잃어버린 것만 같은 시간을 찾고 싶을 때 나는 새로운 오아시스를 향해 어딘가로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정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푸르스트는 자신을 찾기 위해 방에서 칩거하며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을 드리우고 홀로 고독과 외로움을 삼키며 글을 썼다고 하지만 나는 여행을 택한다. 읽고 싶은 책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한 귀퉁이에 이렇게 씌여 있는 책이었다.
그대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아무도 그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도 그 무엇으로 그대를 위협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 어떤 걱정거리로 그대 마음을 흔들지 않을
시간을 가져야 한다.
떠나는 나에게 툭툭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