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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Aug 09. 2016

24. be 콰이어트

나는 나를 왜 이렇게 모르는 걸까


이번엔 숙소 선정에 나름 심혈을 기울였다. 아무리 나만의 시간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지만 연말을 쓸쓸하게 혼자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리뷰를 보다가 한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호이안의 베스트 민박집! 식구들이 가족처럼 환대해줍니다! 잊을 수 없는 베트남 가정에서의 저녁 식사! 각국 여행자들과의 즐거운 만남! 머리보다 빠른 내 손은 어느새 예약 버튼을 클릭하고 결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왜 이렇게 모르는 걸까....!





민박집에 도착하니 식구들이 뛰어 나와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반가워. 난 히엔이라고해. 호이안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물어봐. 한국엔 언제 돌아가? 공항갈 때 차는 예약했어? 내일은 뭐할 거야? 참, 오늘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할 예정인데 꼭 먹으러 와. 다들 올 거니까 특별한 저녁이 될 거야.” 


짐도 풀기 전이라 좀 얼떨떨했지만 이게 베트남식 민박집 친절인가보다 했다. 방에 짐을 부려 놓고 잠깐 쉴 겸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누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나는 히엔의 사촌이야. 다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어. 너만 괜찮다면 영어 연습 좀 해도 될까? 한국 사람들은 어떤 영화 좋아해?” 영화 외에도 좋아하는 색깔이라든가 한국 대학생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걸 내가 대체 어떻게 알겠냐 만은) 등등 소개팅 자리에서나 나올법한 질문들에 대한 대화를 몇차례 더 나눈 뒤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거실을 빠져 나와 방 침대에 드러누워 낮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글지글 탁탁탁 분주한 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저녁 시간. 거실은 동네 잔치가 벌어진 듯 했다. 민박집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 딸들과 아들, 사촌들 그리고 미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에서 온 여행자들. 우리는 저녁을 함께 하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셨다. 즐거웠고 화기애애했다. 음식은 훌륭했고 가족들은 더없이 친절했으며 여행자들은 유쾌했다. 잔을 부딪히고 단체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분명 즐겁긴 한데, 시간이 갈수록 피곤함도 함께 몰려왔다. 다시 말하지만 파티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런데 왜?








파티도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다.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에서 그녀는 말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2-3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이다. 이런 통계가 놀랍다면 그것은 아마도 외향적인 척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내향성은 수줍음과는 다르다. 이것은 자극에 반응하는 태도의 문제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엄청난 자극을 받고 싶어 한다. 반면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조용한 환경과 더 많은 자유 속에서 가장 생기 발랄하고 능력을 발휘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없었다면 세상에 다음과 같은 것들은 없었을 것이다. 중력의 법칙, 상대성의 법칙, 진화론, 쇼팽의 녹턴, 고흐의 해바라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피터 팬, 조지 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 개인용 컴퓨터, 구글, 해리포터.



내향적이라는 의미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혼자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내면의 힘이 소진될 때는 의도적으로라도 ‘회복 환경’으로 가야 한다고. 자신의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고요한 시간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고. 이를 테면 산책 같은. 다윈은 저녁 식사 초대를 마다하고 홀로 숲 속을 걸었다고 한다. 뭐 그럴 것 까지야. 나로써는 굳이 저녁 초대까지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식사 시간은 언제나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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