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여행이 나의 운명인 것일까? 아무튼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그러고 보면 용한 점쟁이란 잘 맞추는 것 보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리라...!
나는 종종 말하곤 했다. 좋은 일이 생겨도 이건 운명이야!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이건 운명이야!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주 운명에 기대었다. 삶이 답답하고 일이 꼬일 때마다 운명 탓을 했다. 그것은 허공에 기대는 일만큼이나 위험했지만 운명이란 종종 신의 계시로 시작되었다. 가령,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마침 세일이고 딱 하나가 남았다. 어머나, 이건 신의 계시야! 그 물건을 사야하는 합리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발리행 비행기 티켓도 그렇게 운명처럼 손에 들어왔다. 휴가 기간에 딱 맞추어 프로모션 세일! 여지껏 발리는 신혼여행이나 가는 섬으로 알고 있던 내게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부채질을 한 책이 있었으니 Eat. Pray. Love. 그러니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책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누구이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자 홀로 1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이탈
리아에서는 쾌락의 기술을, 인도에서는 신앙의 탐구를, 발리에서는 인생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찾아 행복해진다는.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신앙이니, 균형이니, 자아의 발견이니 다 됐고, 결국 여행의 끝에 발리에서 운명적 사랑을 만나서이지 않을까?!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운명적 로맨스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발리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책 속에서 작가는 우붓(Ubud)에서 한 주술사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끄뜻 리에르. 9대째 주술사를 해오고 있으며 신통한 점괘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바로 이거야! 주술사를 좀 만나봐야겠어! 나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알려줄지도 몰라!
하지만 책은 몇 년 전 이야기이고,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해도 어떻게 주술사를 찾는단 말인가? 내가 생각해도 허무맹랑한 발상이었지만 만날 운명이라면 만나지겠지 싶었다. 사실은 운에 기댈 필요도 없었다. 구글이 있으니까. 클릭 몇 번으로 주술사가 아직 우붓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심지어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손에 넣었다. 그곳을 다녀 온 미국 여자가 친절하게도 명함까지 찍어 올려놓은 걸 발견한 것이다. 나처럼 그를 만나보리라 결심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나 보다. 이미 그곳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성지요, 발리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의 주술사에게 점을 보러 가겠다는 사실이 좀 우습긴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나의 운명은 여행, Journey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