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는언니 Aug 24. 2016

27. 운명

앞으로 많은 여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니...


여기가 그렇게 용하다면서요?


나는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XX 건강원. 이미 거쳐간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주, 관상, 손금까지 세가지를 동시에 보기 때문에 더욱 신통하고 믿음이 간다고 했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한약방이었지만 이곳은 엄연히 ‘점집’이었다.


그 동안 호기심 반 절실함 반으로 다양한 것을 두루 섭렵해왔다. 사주 카페, 길거리 손금, 타로카드, 별자리 운세, 철학관, 관상, MBTI, 애니어그램, 그리고 점집 등 과거와 현대, 동서양을 넘나들며 나의 운명을 알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인정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신과 상담소가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란 걸. 대화와 카운셀링을 통해 시간을 들여 자신 안의 깊은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상처 입은 내면의 자아를 치유하는 대신, 점집으로 쉽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곳에선 구구절절 애로사항을 읊을 필요도 없이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만 알려주면 오케이니까. 이미 지나간 과거를 맞춘 것에 신기해 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든가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해서 누군가 말해주길, 그리하여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내 자신을 합리화하고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장에 말이다.





"어디 보자...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구먼."


여행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나요? 


나의 질문에 점쟁이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들어 양 옆으로 까딱 까딱 흔들어 보였다. 


"단순히 좋아하는 걸 말하는게 아니고... 그러니까.. Travel이나 Sightseeing이 아니고... 말하자면 Journey지. 그래 Journey! 삶과 여행이 아주 깊은 연결이 되어 있다.. 이말일세. 세상 밖으로 돌아다녀야 빛을 보는 사주야. 아프리카의 초원, 아마존 정글, 사하라 사막. 그런 대자연까지도 품을 수 있는 영혼이랄까. 여행이 삶에 영감을 줄 거야.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럼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혹시 제게 로또 운 같은 건 없나요?


"뭘 해도 먹고는 살 수 있으니까 로또는 안 사는 게 좋아. 그런 운은 없어. 그리고 로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로또란건 사실은 불운이야."


로또가 불운이라고요? 그건 왜죠?  


"믿거나 말거나지만.. 인생이라는거 길게 놓고 보면 행과 불행이 플러스 마이나스로 제로지. 근데 로또란 놈은 말이야.. 그 행운을 한방에 가져가는 거라네. 로또에 자네 인생의 좋은 운을 다 써 버릴 작정인가?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길가다 벼락도 맞는 거라고. 이걸 아는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되면 기부를 하거나 좋은 일에 쓰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좋은 운을 쌓아가는 거야. 로또 생각일랑 말고 좋은 일로 행운을 쌓게."   





점쟁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얼마전에 심심풀이 산 복권 3장이 모두 꽝이었던 건 사실은 좋은 운이었던 것인가....! 아무튼 돌이켜보니 여행과 밀접한 삶을 살기는 했다. 하지만 점쟁이 말대로라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

어야 마땅할텐데 지금의 나는 휴가여행이나 겨우 가는 직장인인걸. 어쨌든 ‘여행’이라는 세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안다는 점 만으로도 믿음이 갔다. Journey라... 






언젠가 그리스 섬을 여행했을 때 중국식당의 포츈쿠키에서 나온 점괘가 문득 떠올랐다.


그대는 진정한 여행자입니다. 


앞으로 많은 여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니...

매거진의 이전글 26. 해피아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