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무거운 배낭. 덜컹거리는 낡은 버스. 모르는 언어와 낯선 잠자리. 때로 여행은 호강보다는 고행에 가깝다. 그러한 가운데 호사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느긋한 아침식사’다. 평소엔 잠이란 녀석에게 아침 밥을 양보하고 만다. 5분만. 5분만 더.
여행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직 몸은 침대에 누운 채 아침으로 뭘 먹을까 생각한다. 여행자에게 아침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날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는 일단 아침을 먹으면서 궁리한다. 숙소에 아침이 포함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장소를 물색하는 즐거움도 크다. 자, 오늘의 베이스캠프를 골라볼까? 걷다 보면 왠지 끌리는 장소가 있다. 후각을 자극시키고 미각을 일깨우는 끌어당김의 포스가 느껴지는 곳들이 여행자의 본능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그날의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혹은 취향에 의해 메뉴는 다양해진다. 토스트에 오렌지주스. 크로와상과 진한 아메리카노. 이국의 향이 물씬 풍기는 쌀국수 또는 과일 몇 조각에 향긋한 차 한잔을 곁들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건 아침식사를 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에너지가 한 칸씩 차곡차곡 충전된다.
이 시간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를 달뜨게 한다. 여행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무한대로 마음껏 뻗어있는 자유로운 시간. 아침식사가 호사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시간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걀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프라이 두개요! 써니사이드업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식사 메뉴는 ‘달걀 프라이’다. 달걀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고 물어오면 취향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티없이 하얗고 깨끗하게 구워진 흰자 위에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두개의 3D급 입체 노른자.
톡- 하고 깨트려서 흘러내린 노른자에 빵을 찍어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내 옆에 앉은 여행자는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의 접시엔 흰자와 노른자의 양면이 바싹 구워진 달걀 프라이가 놓여져있다. 노른자를 익히지 말고 빵을 찍어서 한번 먹어봐요. 얼마나 맛있는데.
어느새 내 취향을 남에게 고집하고 만다. 상대방의 취향을 무시하려 했던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고 합리화를 해보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오만함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랴. 남에게도 자신만의 오롯한 취향이 있다는 사실을 달걀 하나로 간단히 무시해버린 꼴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마다 달걀을 먹는 스타일이 가지각색이다. 노른자를 살짝 터트려 반만 익힌 프라이, 완전 익힌 프라이. 삶은 달걀, 그것도 반숙이냐 완숙이냐. 스크램블. 끓는 물에 익힌 수란. 계란말이같은 오믈렛에서부터 베이컨과 치즈, 버섯 따위를 넣은 오믈렛까지. 달걀 먹는 방법 하나도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나머지 것들은 얼마나 더 다양할까.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다. 혹시 우주의 중심은 달걀을 먹는 개개인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