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이 집에 내가 고른 물건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쯤 놔두면 안돼? 핑크색에 온통 꽃 그림 벽지. 더 이상은 못 참아!”
어느 날 남편이 아내를 향해 토로한다. 영화 <타인의 취향> 속 주인공은 특별한 취미도 없고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가 그녀만의 취향에 따라 온 집을 꽃 무늬와 핑크 톤으로 꾸며온 것을 묵묵히 참아왔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으로 직접 사서 벽에 걸어놓은 그림을 아내가 묻지도 않고 치워버리자 그만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로의 취향이 달라 이도 저도 아닌 스타일이 되었다. 그리스풍으로 푸른 칠을 한 벽지에 커튼은 프로방스풍, 소파는 북유럽풍, 거실 러그는 인도 네팔풍에 벽에는 여행의 전리품으로 호주 원주민의 그림과 발리의 목공예품 그리고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사온 접시가 걸려있다. 간혹 택배를 배달해주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인테리어가 참으로 애매 모호하다는 걸. 어느 날 그도 영화속 주인공처럼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저 프로방스풍의 커튼은 도저히 못 참아주겠다고.
그렇다면야, 뭐.. 당장에... 떼어내줄..... 용의가......................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듯이 나 역시 그렇다. 좋아하는 작가, 책, 그림, 영화, 음악, 옷과 액세서리 스타일에서부터 즐겨 마시는 커피와 음식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취향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고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은 취향이 없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안의 취향을 새로이 발견하고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사랑하게 된 듯 했다. 처음으로 본 연극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고, 취향이 무시되자 분노를 한다. 드디어 자신 안의 욕망을 분출하고 그것을 지키고 싶어진 것이리라.
그러므로 취향이란, 바로 욕망의 발현으로 좋아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직업이나 역할을 제외하고 나를 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닐까. 혹은 싫어하는 것들이거나.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란 책에서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로 공감한다. 모르는 상대방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묻는 질문은 대게 취향에 관한 것들이다. 무슨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즐겨보는 책이나 영화는 무엇인지. 어떤 스타일의 여행을 즐기는지.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인지. 술을 좋아하는지 술자리를 좋아하는지.
신기한 사실은, 돌아오는 대답에서 유추하건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알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취향이란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인간 그 자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