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정말로 좋아하는지 혹은 착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노트를 펼치고 좋아하는 대상의 리스트를 나열해본다. 날씨, 여행지, 책, 영화, 음악, 사람, 취미 등등. 그리고 시간을 들여 세부적으로 적어본다. 그것들은 명사에서 동사로 옮겨간다. 가령, ‘여행을 좋아한다’를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한 장소에 짐을 풀고 단골 카페를 만들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오후엔 느긋하게 동네 산책을 즐긴다. 즉, 오래 머물러도 가본 데가 별로 없는 게으른 여행을 좋아한다.’가 된다.
촉이 빠른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일지 조금은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쌓인 목록들을 모아 보니 나만의 색깔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 내가 보였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취향이야말로 나답게 살게 해주는 것이로구나.
한편으론 취향이 아예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호불호가 없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그만큼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해질 테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그 경계가 생겨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살아가려면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씩 발견하며 늘려 가는 수 밖에. 단, 어디까지나 누가 뭐라고 하든 나에게 좋은 것들을 찾기 위해서이지 취향을 잣대로 남을 평가하거나 폄하하지는 말자고. 누가, 달걀을, 어떻게, 먹든, 말든, 말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친구와 서로의 취향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보니 그 선택의 기준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입맛은 선천적인 것도 같고 취미는 성향이 반영된 듯도 하고 책과 영화는 보고 자란 문화와 환경의 영향에 의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건 오직 ‘경험’에 의해서 나만의 취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정말로 좋아하는지 혹은 착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왕이면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해야지싶다. 내게 있어 그러한 경험의 으뜸은 여행이다. 여행은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이 주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별 것 아닌 일로 곧잘 만들어버리곤 했다. 낯선 길에 나를 떨어트리고, 언어와 피부가 다른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고, 처음 보는 생경한 음식을 먹게 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이 여행에 적합한 체질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점! 현지 음식 적응률 100%! 이전에는 독특한 풀이나 향신료랄지 특이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잘 먹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지금은 여행할 때마다 반드시 시간을 내어 현지의 요리를 배울 정도로 좋아하고 즐기게 되었다. 세상 어디를 가든 취향만큼이나 다양한 음식이 있고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제나 경험한 후에야 그것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혹은 착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음식도. 여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