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상한 나라

내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해줄래?

by 노는언니


나는 지금 파리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몰두해있다. 책을 읽거나, 카톡을 하고,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의자에 기대어 졸기도 하고. 일요일 오후처럼 한갓진 풍경들 사이로 커다란 시계가 보인다. 아뿔싸! 출발할 시간이닷! 황급히 배낭을 울러 메고 게이트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한 발짝. 두 발짝. 뭔가, 이상하다. 뛰어도 뛰어도 제자리. 배낭이 너무 무거운 걸까? 다시 한번 힘을 여엉차. 그럴수록 발은 본드로 붙인 것처럼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쉬익쉬익-하고 쉰소리만 나올 뿐이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이어서 곧 탑승하지 않으면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나는 어질어질 현기증이 일어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때였다. 무언가 손등 위로 펄쩍 튀어 올라온 것은. 뭐지? 내려다보는 순간, 아아아악!






번쩍.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나를 놀라게 만든 원인의 주범은 귀뚜라미였다. 바퀴벌레, 매미와 더불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3종 세트! 여전히 찌르르륵- 울음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소리의 진원지인 핸드폰을 끄고 시계를 보았다. 이번엔 진짜 비명 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지각이닷! 전날 밤알람을 재설정하다가 1시간이나 뒤로 잘못 맞춰놓은 것이다. 나는 밥을 굶어도 야옹이 밥은 챙겨준 다음 고양이 세수를 하고 헐레벌떡 뛰어 나와 김밥 옆구리 터질 것 같은 출근 지하철 속으로 나를 구겨 넣었다.



추궁 추궁- 추궁 추궁-


달리는 지하철 너머 시커먼 벽에 유리창을 통해 반사된 얼굴이 둥실 보인다. 씨익, 웃어 보았다. 얼굴은 나를 따라 씨익, 하고 웃었다. 그 모습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내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해줄래?"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 지에 달려있지
"어디든 별로 상관없는데..."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가든 무슨 문제가 되겠어
"내가 어딘가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야..."
넌 틀림없이 어딘가에 도착하게 돼 있어. 걸을 만치 걸으면 말이지
"이 근처에 누가 살고 있니?"
저쪽에는 모자장수가 살고 있고, 저쪽에는 3월의 토끼가 살고 있어. 둘 다 미쳤으니 너 좋을 대로 찾아가봐.

"하지만 난 미친 사람들에게는 가고 싶지 않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미쳤으니까. 나도 미치고, 너도 미쳤지.
"내가 미친 건 어떻게 알아?"
넌 틀림없이 미쳤어. 그렇지 않고서는 여기 왔을 리가 없거든.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weareallmad.jpg 출처: alice-in-wonderland.net



이번 정차역은 시청- 시청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뭐라고? 시청역?!

순간, 고양이는 사라지고 놀란 내 얼굴이 보였다. 바로 전역에서 내렸어야 하는데 멍 때리느라 한 정거장을 더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 대마왕 지각인데 내가 정말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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