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홉 수

남쪽으로 튀어!

by 노는언니


내 생일은 한번 들으면 기억하기 쉬운 날짜다. 12월 24일 하고도 크리스마스이브. 날이 날이니만큼 그날은 다들 가족 혹은 애인과 약속이 있는지라 나는 친구들로부터 항상 미리 앞당겨 축하를 받곤 한다. 그러니 막상 생일 당일은 이 지구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얼른 핸드폰을 확인한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xx클리닉' 이빨 치료를 했던 병원에서 온 문자다. 잠시 후 까똑! 이번에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다시 확인을 한다. 보험회사에서 보낸 축하 메시지. 생일날 나를 제일 먼저 기억해주는 곳이 병원과 보험회사라니. 그것도 알고 보면 컴퓨터 고객관리 자동시스템에서 알아서 맞춤 문자 서비스를 내보낸 것일 텐데. 바깥 날씨도추 운데 마음까지 덩달아 춥고 외로워진다. 며칠 뒤면 새해가 다가오는데 그마저 달갑지가 않으니. 올 한 해 계획했던 것들이 또 계획으로 끝이 났다. 딱히 한 일없이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만 같고 미래를 생각하면 막연히 불안하고 이대로 정체될까 봐 두려웠다.



친구 왈, 아홉 수라 그래, 아홉 수라. 정말 아홉 수라 그런 걸까? 주변을 보면 특히 여자들이 아홉 수에 약해지는 듯싶었다. 19, 29, 39, 49, 59,..... 아홉이란 숫자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특별히 달라진다기 보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기로, 어떤 정신적인 고비여서가 아닐까? 여자에게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은 일종의 멘탈충격으로 이전에는 쉽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후에는 쉽사리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상실에 대한 인식과 - 그것이 젊음이든, 체력이든, 피부 탄력이든, 꿈과 열정이든 -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계가 아닐까? 그러니까 여러모로 두렵고 외로워지는 때인 것이다.






어떤 책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찐하게 위험을 무릅쓰는 거라고 하면서 몇 가지 특급 비법을 소개했다. 거기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상사에게 임금 인상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다른 사람한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자원해서 발표나 연설을 한다. 멋진 레스토랑에 혼자 가서 스테이크를 시켜 저녁을 먹는다. 스카이다이빙을 배운다. 등등. 이건 뭐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른 사람이 되어보라고 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이거다, 하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낯선 곳으로 멀리 여행을 떠난다! 돌이켜보니 혼자 여행을 떠나 본 게 언제였던가. 그 길로 내 손은 빛의 속도로 항공 예약 사이트를 클릭하기 시작했다. 올해 연말은 방'콕'에서 진짜 '방콕'으로 가야지. 뜨거운 태양이 두려움과 외로움을 구석구석 말려 줄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는 거야. 남쪽으로 튀엇!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