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트렌짓

즐길 수 없다면 피할 줄도 알아야지. 안 그래?

by 노는언니


새벽 5시 17분의 공항. 마치 ‘모두가 잠들었음’이라고 팻말이라도 써 붙인 듯이 티켓팅 카운터도 면세점도 커피와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도 환전소도 모두 문을 굳게 닫은 시간. 아직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엔 졸리고 지친 기색이 배어 있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 수면안대를 하고 서로의 등과 등에 기대어 앉은 사람, 바닥에 아예 침낭을 깔고 누운 사람 등 이곳은 모두 어디론가 가기 위해 기다리는 트랜짓 승객들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나는 몇 시간째 멍하니 앉았다.



이따금씩 내 삶은 타야 할 비행기를 기다리며 새벽녘 공항의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어떻게든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쓰는 트렌짓 승객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특별히 큰 불만은 없지만 무언가 내 몸에 딱 맞지 않는 불편함.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의자의 팔걸이는 고정되어 있어 편하게 다리를 뻗을 수도 없고, 눈은 충혈되어 있고, 계속해서 시계를 들여다 보고, 졸리지만 그렇다고 마음 편히 잠들 수도 없는 상태. 어쨌거나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말이다. 비행기를 타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도착하기 전까진 말이다.



너무나 피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말똥말똥한데, 어디선가 나직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쪽에서 누군가 말간 얼굴을 하고 기타를 튕기고 있었다. 피곤한 이 새벽에. 트랜짓 시간이 왜 이따위인지 푸념하는 이 새벽에. 졸리고 배고픈이 새벽에.


카르페디엠!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안 그래?
그의 기타는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카르페디엠!
즐길 수 없다면 피할 줄도 알아야지. 안 그래?






나는 슬그머니 가방을 챙겨 들고 잠을 청할만한 자리를 찾아 나섰다. 길게 뻗은 공항 대기실에 까맣게 매달려있던 창문들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도착지가 어떤 곳인지 가봐야 알게 되겠지만 미리 두려워하며 떠나지 못한다면 트랜짓 상태에 머물 수밖에. 어쨌거나 도착해야만 한다고. 도착하는 그 곳에 진짜 삶이 있으니. 창문 넘어 어렴풋이 보이는 허무하도록 휑한 벌판 위로 이국의 새벽 별이 깜박거렸다. 그제야 까무룩 졸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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