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만남

혼자 여행왔나요?

by 노는언니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여행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B양을 비행기 옆 좌석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같이 카오산으로 왔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아래 후덥지근하고 시끌벅적한 방콕 카오산 로드의 밤. 거리 리역카의 뜨거운 철판 위에서는 태국볶음 국수인 팟타이가 쉴 새 없이 볶아져 나와 밤의 열기를 더하고, 성업 중인 길거리 마사지 가게에서는 하루의 피곤을 풀고 가라고 유혹하고, 여기 저기서 쿵쿵거리는 진동까지 느껴지도록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엔 술 취한 여행자와 유흥객들이 뒤섞여 소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온 방콕은 그동안 많이 변해서 여느 도시처럼 느껴졌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듯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여전히 방콕이 좋다.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기차고 밝은 에너지가 넘실댄다. 살짝 외롭다고 느껴지는 건 이 도시가 내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나왔기 때문이리라.



팟타이 한 접시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오니 나 홀로 여행자들이 노트북과 목하 열애 중이다. 떠나온 곳의 친구들과 가족에게 이 곳의 소식을 전하는 거겠지. 외로움도 달랠 겸. 나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접속한다. 호기롭게 떠나왔건만 그곳의 뉴스가 벌써 궁금하다. 오늘의 검색어 1순위는? 클릭클릭... 여기는 이렇게 더운데 한국엔 눈이 많이 왔네... 클릭클릭. 스크롤을 내리자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를 전전하며 영자신문을 읽는 어느 노숙자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외무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는 인텔리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의 호의도 일부러 거부하며 그렇게 지낸다고 했다. 그분의 사연이 무척 궁금했지만 더는 나와있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이 분. 그동안 많이 외로웠을 것 같네. 클릭... 클릭... 아 피곤하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수상시장에 갈 수 있으려나....






혼자였다면 외로울뻔했던 방콕에서의 시간들이 비행기에서 만난 B양 덕분에 아기자기해졌다. 결국늦잠을 자서 수장시장에 못가는 바람에 아침을 먹으러 나선 카오산의 거리에서 우린 우연히 다시 마주쳤고 즉석에서 의기 투합하여 여기저기를 같이 쏘다녔다.


태국을 너무 좋아해서 벌써 여러 번 여행했다는 그녀 덕분에 일본인 거리에 있는 맛있는 쌀국수 집을 알게 되고, 타마삿대학 구내식당에서 학생 밥도 먹어보고, 사원에서 태국 정통 마사지도 함께 받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방콕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라는 스프링 카페에도 가고, 물에 타서 먹으면 트림이 나면서 금방소화가 되는 태국 소화제도 알게 되었다. 혼자 갔으면 정말로 외롭고 어색할 뻔했던 시로코에서 모히토와 마이타이를 마시며 방콕의 야경도 실컷 구경했다. 시로코는 르부아 호텔 63층 루프톱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으로 방콕을 다녀온 사람들마다 반드시 가봐야 한다며 강력히 추천해줬던 곳이었다. 페이스북 식으로 말하자면 좋아요!였다. 한쪽의 원형 바(Bar)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있고, 그곳엔 반짝이는 방콕의 야경이 은하수처럼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져 있었다.


근데 B야, 이렇게 멋진 곳을 나랑 와서 어떡해. 다음엔 꼭 애인이랑 와.


그래도 언니랑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전부 쌍쌍인데 혼자 왔으면 나 정말 슬펐을 것 같아.






지상에도, 공중에도, 외로운 영혼들이 가득한 밤이다. 그래서 덜 외로운 밤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온 것 자체도 외로워서 이지 않을까.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이드북 이름 마저'론니플래닛(Lonely Planet)', 즉, 외로운 행성이니 말이다. 여행을 왔다고 외롭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할 수 없다. 누가 등떠민 것도 아니고 스스로 좋아서 흔들흔들 길을 가는 거니까. 어찌되었건 내가 선택한 장소에 내가 있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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