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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Nov 18. 2016

39. 남자의 조건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삶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더군다나 자신이 '여행하는 여자'와(이전 글 참조) 어느 정도 비슷하다면 정말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하는 여자와 사귀지 말라’는 표현은 다소 역설적이다. 남자들을 향해 '나는 이런 여자니까 감당할 수 없으면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당당하자. 그리고 함께 더욱 잘해보자.라는 의미로 나는 해석했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는 여행 친구들로 가득하다. 블로그를 통해 여행으로 알게 된 친구, 여행자 모임을 통해 만난 친구,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은 친구,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친구. 등등. ‘여행’을 매개로 만난 사이지만 막상 만나면 여행 이야기 보다는 ‘남자’ 혹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주 나누곤 한다. 이상형의 남자가 도마에 오르면 세상에 우리만큼 이기적인데다가 까칠하고 까다로운 여자들이 또 있을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못해도 상관없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살사를 출 줄 알아야 한다. 째즈와 보사노바와 맥주를 즐겨야 한다. 자주 같이 산책을 해야 한다.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 책읽기를 좋아해야 한다(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금상첨화). 여행을 좋아하고 함께 즐겁게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 대화가 잘 통해야 한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꿈을 응원해주어야 한다.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때가 되면 여행을 떠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여행을 떠난 동안 혼자서도 잘 지내야 한다! 등등. (이러한 조건에는 나 역시 상대방을 위해 그렇게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이렇듯 원하는 남자의 조건에는 직업이며 돈, 집, 자동차와 같은 품목은 올라가지 못한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단 안중에 없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도 한참은 밀려나 있다. 싱글 친구들은 가끔 묻곤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남자가 없나? 돈이나 자동차 혹은 직업을 먼저 봐야할까? 어쩌면 그편이 더 빨리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이유는 또 있다. 여행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짐을 싸다 보면 살아가는 데는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다. 옷 몇 벌과 신발, 여벌의 속옷, 세면도구, 약간의 화장품, 침낭, 비상약품 정도. 그렇게 꾸린 가방 하나면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으니 집이나 자동차, 가방과 옷 보다 다음의 여행이 훨씬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물론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생각은 반 이상이 날아가고 집 안에는 다시 물건이 쌓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여행에서 득템한 물건까지...


아무튼 이런 이유를 이해해주는 남자와 심플한 삶을 동경할 수 밖에. 그래야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마음이 늘 편한 건 아니다. 여행을 가서는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나의 일상과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러나 때가 되면 떠나야 하고 돌아온 후에야 활기를 되찾아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다시 일상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하지만 이미 사과를 따먹어 버리고 말았다. 알아버리고 말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그에 따르는 불확실함이 가득한 삶 또한 스스로 책임져야 함을. 그리하여 자신만의 북소리를 따라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비밀을. 가장 안정적인 삶은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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