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드립니다.
완벽한 기억을 심어 고객이 원하는 환상을 현실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회사가 있다. 그저 꿈을 말하고 기계장치에 몸을 내맡기기만 하면 된다니 솔깃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토탈리콜> 속 이야기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요술램프 지니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듯 만약 어떤 꿈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
친구들의 소원은 다양했다. 죽기 전에 제대로 된 책 한 권 쓸 수 있기를.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여러 언어를 잘할 수 있기를. 유기견 보호소를 만들 수 있게 돈이 많기를. 주변에 늘 좋은 사람들이 많기를. 등등. 나는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소원들은 요정이 나타나 굳이 들어주지 않더라도 노력만 한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한 친구가 덧붙였다.
“자신의 소원 중 큰 부분을 깊이 분석하면 거기에 자기 자신이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삶의 핵심 이슈인거지”
소원까지는 아니지만 살면서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이국의 낯선 거리에 넘치는 사람들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허울 없이 어울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새해 소원을 빌며 환호로 축배를 드는 일이었다. 그러면 왠지 제대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회는 치앙마이 여행길에 찾아왔다. 같은 숙소에 머물던 여행자들과 함께 새해를 맞기 위해 올드시티의 타패 광장으로 나갔다. 대지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밤은 여전히 따듯했고 사람들은 랜턴을 하늘로 띄워 올리며 소원을 빌었다. 까만 허공 속으로 높이높이 올라간 랜턴들은 반짝이는 별처럼 보였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해피뉴이어!!
공중에 떠다니는 별 사이로 폭죽이 꽃처럼 피어올랐다. 우리는 정말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벗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인기 그룹의 새해 축하 공연을 보며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우리도 소원을 빌어볼까? 그런데 저 랜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글쎄, 아마도 멀리 날아가서 소원을 전한 다음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날 밤 하늘엔 사람들의 소망을 가득 담은 랜턴들이 별 보다 더 빛났다. 오늘의 소원은 무조건 다 이뤄질 것만 같았다. 나도 소원을 빌었다. 저 별까지 날아가서 꼭 이루어지라고. 어떤 랜턴들은 멀리멀리 날아 까만 밤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타다 만 랜턴들은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렸다.
하늘에 선을 그은 듯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나는 소원을 빌었었다.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별똥별한테 항의를 할 순 없었다. 그날 이후 나조차 내 소원이 뭔지 잊어버렸으니까. 그 뒤에도 나는 종종 소원을 말하곤 했다. 보름달에게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서도.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다지 간절하지는 않게. 소원은 과연 누가 들어주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몇 날 며칠 그 사람의 소원을 듣고 있던 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 제발, 복권부터 사라고!
돈이 많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을 자유를 손에 쥘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던가. 복권 당첨은 내 소원 중 하나였다. 물론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권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로 한두 번 사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사지도 않고 당첨되기를 바라다니 어이가 없지만 당첨자의 기사가 뜨면 궁금했다. 도대체 비법이 뭘까? 비법이란 게 있기는 할까?
조상이 나오는 꿈을 꿨다. 꿈에 당첨 숫자가 나왔다. 1등이 제일 많이 나온 복권 가게에서 구입했다. 등 제각각이었지만 인터넷 검색 끝에 알아낸 공통점은 당첨자 대부분이 당첨될 때까지, 꾸준히, 복권을 구매했다는 사실. 그것이 당첨의 비법이었다. 나는 십시 일반 하여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준 셈이로구나. 으아 피 같은 내 돈!
그러니 복권은 포기하고 버킷리스트나 작성해볼까. 하고 싶은 것들을 써보는 그 순간만큼은 이게 다 이뤄질 것 같은 기분에 그 누구도 부럽지가 않다. 한 줄 한 줄 가장 진취적이고 자신만만한 나를 만난다. 종이 위에서 나는 자유롭게 나부낀다. 히말라야에 오르고, 사막에 누워 쏟아질듯한 별과 마주하고,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타고 나가 돌고래 떼를 만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아무 계획 없이 1년 쉬기도 하고, 치앙마이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고, 세계 각국에서 요리를 배우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며 노마드적 삶을 살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저 좋아 보여서 원하게 된 건 아닐까? 모를 일이다. 직접 경험해보는 수밖에. 해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