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는 날, 집돌이 늦은 반항

by 스톤처럼

주 5일 근무, 주 2일 휴무. 대학 졸업한지도 1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는 30대 중반. 그만큼 커리어적으로 사회생활이라는 삼겹살 비계 같은 군살이 불어나고 있는 요즘. 주 2일 휴무에서 절반 이상은 가족에게, 간신히 남는 시간이 생기면 나 자신에게 쏟는 10월의 어느 날.


이번 휴무에도 부모님 계시는 본가로 향하는 와중에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가슴 속 비수에 꽂혔다. 묵직한 보디블로우처럼 훅 들어온 이 한 줄에서 마음조차 나이가 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성장은 변화를 통해 찾아온다'라는 식상한 메시지인데 이 날은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는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성장은 모르겠고, 내가 진부하다고 느끼면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한심하기 그지 없다. 내가 나를 봐도 그렇다.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향하고 있는 나이에는 사회생활 알만큼 알고 인간관계에 피로함을 느끼는 건 나만의 일이 아니기를. 혼자 정신승리하고 있다.


나는 집돌이. 집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집밥을 해먹고, 잠 또한 많아서 휴일은 정량의 수면시간 8시간을 꽉꽉 채워 자는 것 같다. 일어나 집안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다음 출근 준비하고 멍- 때리며 나름 명상도 한다. 사실 어느정도 패턴이 되어버린 혼자 사는 집돌이 일상에서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마음은 호기심을 갖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집안일은 끝나지 않는다. 일주일간 밀린 것들을 처리하고 세금을 내고, 뭐뭐 하다보면 하루가 다 간다. 이번에도 똑같은 휴일을 보내는데, 쉬고 있는 와중에 한숨이 나온다. 안 되겠다. 오후 5시, 안 돼. 나가야겠다. 산책이라도 하자. 이 생각을 아까 세탁기 돌릴 때 했던 것 같은데, 오후 5시 5분이 지나서야 몸을 움직인다.


대충 모자 하나 눌러쓰고 나왔다. 아직 본격적인 퇴근시간이 되지 않아서 동네가 조용하다. 탁 트인 곳에서 바람 좀 쐬고 싶다, 우리동네 바로 그런 곳이 있지. 갈 곳이 생겼다. 가보자. 후리스까지 뒤집어쓰고 나왔건만 겨드랑이 사이로 '외부인' 바람이 들어온다.


일주일 중 며칠 열지 않는 동네 독립서점 지난다. 손님은 없지만 책방지기님은 기분이 좋아보인다. 노트북으로 무얼 하고 계시나. 지나간다. 지금 가는 데만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지. 오래된 슈퍼마켓을 지난다. 대형 마트가 아닌 이상 편의점도 있는 마당에 규모의 경제인지 돈의 경제인지 일반 시중가보다 살짝 비싼 점이 없잖아 있지만 이 동네 원주민 터줏대감인 할머니 할아버지 보러 가끔 간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 동네 와서 커피 마시고 싶다고 들어가 핫초코를 마시던 카페도 마감 준비를 한다. 날씨가 이러니 다른 계절에서 찾을 수 없는 운치가 이 카페의 감성을 자극시킨다. 빨리 가보자. 거기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골목길 지나 올라가는 길에 진입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내 그림자 실루엣을 보고 있으니 운동 좀 해야겠다는 게 보인다. 아, 분명 몇 달 전부터 눈여겨보던 길목을 달리자고 했는데 실천은 아직이다.


동네에서 무료로 시내뷰를 볼 수 있는 곳에 도착. 오늘 첫 외출에 날씨가 좋다, 나와니 좋다 여기다 시내를 보니 어딘가 흐리다. 높디높은 건물들이 잘 보이진 않는다. 구경이라 해봐야 전망을 보는 게 전부이니, 사실 이 곳은 무언가 먹거나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없다. 다시 집으로 갈까.


옆동네 편의점을 일부러 검색한다. 가봐야지. 일부러. 갈 거야. 다시 새로운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퇴근길에 올라선 사람들 틈바구니를 파고든다. 묘하다. 사람들이 각자 갈 길을 간다. 우리는 간다. 각자의 목적지로. 처음 와보는 골목길을 비추는 주황색 가로등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편의점 앞. 사실 무엇을 살 것이 있어서 온 건 아니다. 그저 나온 김에 이왕이면 집에서 멀리 가보자, 특별한 거 없을 수 있지만 휴일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다. 변화, 그래 변화다. 내일 다시 출근하지만 다음 휴일에는 가보지 않은 곳까지 걸어가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남은 시간은 다시 집돌이 모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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