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쉰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고 가족 간병이든 가정이 있든 누군가를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어려운 말인 게 현실이다. 바쁘게 살아야 하고 오늘이 끝나기 전에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삶의 속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면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요즘 내 생각.
요즘은 알고 있다, 아무 걱정 없이 눈을 뜰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을 하는 주간에는 간사한 야망과 클린치로 힘겹게 버티는 희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일을 하지 않는 휴일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나' 하나만 놓고 본다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따로 있다.
바로 주간 일을 마치고 휴일을 앞둔 저녁의 그 고요함을 사랑한다, 물론 이 또한 간병으로 허락되지 않은 자유로 그친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이 시간을 사랑한다. 우당탕탕 어쩌다보니 살아내게 되어버린 주간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는 잠시의 자유가 주어지는 태풍의 눈, 분명 '휴일'이라는 이름 앞에두고 태풍의 먹구름과 비바람이 강수량 500% 초고속으로 다가오는 장관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상하리만치 '휴일을 앞둔 저녁'은 평화롭다.
하지도 않는 술이 냉장고 안에 있으면 한 컵 (언젠가 나는 이런 모습을 개똥철학이라 명했다), 밥솥 전원 스위치가 하루 이상 쉬고있어 소분된 밥이 없다면 불량식품 좋아하는 초등생처럼 집에있는 인스턴트 음식에 손이 간기도 한다. 의자 허리각도 낮추고 엉덩이를 앞쪽으로 밀어내고 있으면 그게 또 영화관 의자처럼 편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다, 아무런 약속도 없다, 아무런 계획도 없다. 혼자 사는 이 공간은 내가 아는 현실과는 달리 너무나도 조용하다. 내가 존재하고 싶은대로 나를 표현해도 비평을 다는 사람이 없다. 퇴근 후 바쁘게 인맥관리를 위한 모임 또한 없다, 가끔 산책 겸 하는 게 있다면 동네 편의점에 간다. 먹을 건 대충 집에 있으니 먹는 건 패스. 우리 동네 편의점에는 종이신문 가판대가 있다. 한 부에 천 원.
특정 신문사 취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1면에 가장 읽고 싶도록 만드는 카피라이팅이 잘 된 신문사 오늘의 신문 1부를 사서 겨드랑이에 끼고 촐랑촐랑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 동네에서 나처럼 종이신문 비정기 구매하는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다.
나의 보고를 듣고 시큰둥한 상사처럼 나 또한 내가 사온 신문에 검은색 볼펜 들고 읽고 싶은대로 읽고, 피드백 주고 싶은대로 내 마음대로 준다. 이게 이상하리만치 은은한 쾌감이 있다. 딸각딸각, 볼펜으로 호잇조잇 줄 긋고 동그라미 치고 지저분하게 신문 읽다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며칠 전부터 도보 5분 메인거리에서 시끄러운 자동차 배기음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린다. 신나게 밟으신 것 같다. 달려, 달려버려. 크락션 소리에 인상 찌그리다 편안히 의자에 앉아 시끄러운 배기음 듣고 있으면 그 또한 클래식 음악.
스타벅스 미디엄 로스트 아메리카노 스틱 커피 10개입을 구매했다. 동네 마트에서 구매했는데 우아하게 스타벅스 커피를 타준다. 저녁에 커피라니, 나도 좀 보면 어지간히 이 시간이 아까웠나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버리면 어쩌나, 나도 이 시간이 아까웠던거야.
필요하다, 이렇게 고요함에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이. 오롯이 나를 푹 삶아낼 수 있는 시간이. 물론 내일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자알~~ 알고 있지만. 커피 한 모금.
지자체에서 던지고 간 동네 소식지랑 못다읽은 임경선 작가의 호텔 이야기 단편소설집이나 읽어야겠다. 몇 줄이나 읽을까? 에라 모르겠다. 자유인데 뭘, 내 자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