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단편소설집 호텔 이야기 3

by 스톤처럼

지난 피크닉 '힐튼 호텔' 전시회 다녀오고나서 임경선 작가 단편소설집 < 호텔 이야기 > 책을 선물받았다. 한동안 책상 한구석에 올려두고 잊고 지내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글쎄, 오랜만에 받은 소설 선물에 나만의 시간 갖는 휴일 취미시간은 독서에 공을 들였다.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그런지 술술 읽혀넘어가는 건, 책 속 문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선도 포함이라.


임경선 작가 단편소설집 < 호텔 이야기 > 책은 단편 5개를 엮어낸 책이다. 각기 다른 5가지 스토리에서 공통점은 '그라프 호텔'이라는 공간적인 이야기다. 돈이 있으면 누구라도 갈 수 있도록 열려있는 장소가 호텔이고, 개개인으로 본다면 프라이버시 이유로 의외로 폐쇄적인 공간, 다시 말해 호텔은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해오고 있다. 누군가 머물다간 자리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남기고, 그 하룻밤을 디딤돌 삼아 넓혀보면 서로 다른 사람 인생 얼룩이 남아있는 곳이다. 호텔이란 그런 곳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하우스키퍼 이야기다. 하우스키퍼,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하게 쉽게 말하면 누군가 머물고 간 자리의 흔적을 지우고, 누군가가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텔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요즘 같이 '일'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시대에도 하우스키퍼에 대한 시선과 평판은 그리 녹록치 않다. 하우스키퍼,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10명 중 9명은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사연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겠지, 성격적인 문제로 저런 일을 할 거야. 섣부른 임의 판단은 최종 선고처럼 쉽사리 바뀌지는 않는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런 하우스키퍼 일을 하는 등장인물 시선에서 그려진다.


과거 게스트하우스에서 1인 직원 체제로 종사했던 시절이 기억났다. 서울역 인근이었다. 어렵사리 잡은 면접 기회에 피드백이 있었고 좋은 사장님 아래 직원으로서 안전한 울타리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가격대로 본다면 중저가, 배낭여행객 위한 가성비 좋은 숙소였다. 어딘가 낡았지만 그럼에도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은 99% 한국 찾아온 해외 관광객이 많았다. 제공되는 건 거의 없지만 적어도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고 안전한 침대가 제공된다는 것은, 어쨌든 타지에서 온 여행객에게 집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료는 없었다. 혼자 일을 해야 하는 공간으로 내가 오기 전부터 그랬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하우스키퍼 일 또한 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손님이 관광하러 외출한 시간에는 보통 3층짜리 건물에 나 혼자만 있던 적도 꽤 많이 있었다. 창문을 걷어 환기시키고, 클리닝 요청하신 손님이 사용한 이불 또한 걷어내고, 객실 및 복도 욕실 청소를 하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훌쩍 지난 늦은 오후가 되어있었다. 얇은 옷을 입고 움직여도, 고된 노동이라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곤 했지.


남산 너머 해가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거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중심 업무 지구라는 공간에서 조금 벗어나있는 이 곳에는 사람 출신 묻지 않고 많은 사람이 어우러져서 살아가고 있었다. 서울의 한복판이라고 믿기지 않는 고요함이 골목길에 내려않아있으면 그 골목길에서 서울 시내 차소리 들으며 멀거니 언덕집들을 바라보면 그 또한 평화로웠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누구도 따지지 않았다.


온갖 언어가 난무하는 체크인 현장까지 잘 치르고 나면 퇴근 이후 집에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고 있었다. 얼큰히 취한 서울의 밤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지하철역 역사 플랫폼에 서있으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직장인 사이에 들어가 티나지 않았다. 무수히 쏟아내는 잡념에 밤잠을 설치던 날도 많았다.


만약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나를 아는 누군가가 방문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쓸데없는 호기심에 나에게 왜 여기서 일을 하는지 묻는 손님들이 있으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밤에 듣는 라이도에서 마치 내가 라디오 게스트가 된 것마냥 호스트가 '오늘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어요?'라고 묻는다면 '누군가 화장실을 정말 더럽게 사용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답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동창. 초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고 대학교 동창들은 어딘가에서 중간관리자로서 한몫들 하고 있겠지. 쓸데없는 호기심이라 해놓고 이렇게 나는 내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호기심을 부리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꿈자리에서 20대 알바하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있었다. 그 날도 생활비, 학비 벌려고 열심히 알바하고 있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20대가 아닌) 지금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누추한 겉모습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같이 일을 하는 동료는 이번 주말에 어디 놀러갈지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다.


언젠가 친한 동생 초대로 그 동생의 과방에 놀러간 적 있었다. 무서운 게 없는 그 시절에는 맛있는 음식 먹고 떠들며 빛나는 미래에 대해 조잘조잘 수다도 잘 떨었었다. 지금에야 아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는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참 많이 웃고 있던 아이라는 걸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대학교 졸업 마치고 구직 시장에 띄어들어, 이미 일찍이 자리잡은 지인이나 친구들은 SNS에 연신 회식자리에서 먹은 맛난 음식 사진을 찍어 올렸다.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었다. 그때는 대기업 들어가 사무직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인생의 과제처럼 여겨졌고 어떻게든 도달해야 하는 길이라 믿었으니까. 뒤처지는 기분에 대학교 친구들 연락도 멀리했던 적도 있었다. 피하고 도망치고 남들 모르는 곳에 있으면 나는 안전하리라 생각하는.


지금은 서울 아니면 어딘가에서 다들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살고 있겠지. 길에서 본다면 어딘가에서 많이 본 사람 인상착의랑 비슷하구나, 정도로 슬쩍 훑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거다.


어느 날인가. 이탈리아에서 와서 한국 여행 잘 마치고 체크아웃한 손님 객실을 정리하던 날이 기억난다. 그 방은 303호로 우리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채광이 좋은 방이었다. 손님은 꽃과 초콜릿 조금 남겨두고 떠났다. 그녀는 깨끗했다. 마치 원래 이 방에 묵은 적이 없던 것처럼.


루틴처럼 환기를 시키는 데 창밖으로 맑은 하늘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커피 하나 들고 즐거운 산책을 하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도 몇몇 보였다. 거북목이 되어버린 목을 펴서 창문 너머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이 참 이뻤다. 그리고 신기했다. 이 하늘은 지구촌 어디에 있어도 공유하고 있는 하늘일텐데 이 세상에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서울역 인근. 나는 다음 손님 위해 게스트하우스 정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서울역에서 나와 서울 여행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고, 나랑 헤어진 그 이탈리아 고객은 지금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벌써 다른 나라 상공을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참 묘하다.


그동안 들여다보지 않던 SNS 열었다. 궁금하지 않은 이들의 소식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러고 있었다. 방금 5분 전 업로드한 사진으로 추정하건데 이 친구는 다른 나라에 있구나, 저 친구는 아이를 출산했구나. 와, 이 친구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네? 거리낌없이 스크롤해 내려갔다. 이 모든 게 나랑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순간에 존재하는 이들의 소식이라는 게, 무관심 너머 광범위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그제야 마음 속 동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호기심, 나는 그 호기심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무관심으로 일관해주었으면 그렇게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있었건만 20대 지나 지금에 돌아보면 그 사이에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어딘가 숨고 싶은 것은 내가 깨야 하는 유리알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한 걸음씩 다시 나의 길을 가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직감했다. 이제는 내가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종의 준비를 거쳐 분실물 없이 나의 흔적까지 끌어안고 무사히 체크아웃했다. 그리고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보다 큰 규모의 호텔업에 종사하지만 또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이 곳에 있으면 지난 수년간 '무관심'이라는 무기로 치장해온 내가, 인연이 닿는다면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내가 일부러 연락을 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살아내고 있음을 떳떳히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도 견디고 있다. 살아내고 있다.


여전히 지나친 호기심은 부담되지만 적어도 무관심에서는 더 이상 살지 않을 거라고. 숨지 않으려고, 피하지 않고 도망 또한 가지 않으려고. 나 나름대로 노력한다.


과방에서 떡볶이, 치킨, 피자 먹으면서 꿈꿨던 30대 인생과는 거리가 멀지만 살아있다. 용서한다. 기도한다. 응원한다. 욕심내지 않고 살아간다. 잔상은 흘려보낸다. 나를 사랑한다. 사람들을 사랑한다. 가족을 사랑한다. 무관심은 선택할 수 있음을, 내 삶 모든 게 무관심에 있을 필요는 없음을 안다. 살아간다. 그래, 살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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