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번이나 연락이 울렸다. 뒤늦은 저녁을 해치우고 책상 앞으로 오니 뭇내 반가운 이름이 핸드폰 잠금화면에 '부재중전화'로 남아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망설이는 사이 결론은 단순했다. 그냥 내 현황 그대로 솔직하면 되리라.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어지기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아줬다. 나의 전 회사 직장동료, 그 또한 퇴사 이후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갔지만 이제는 선배라는 단어도, 후배라는 단어도 어색하다. 사람 대 사람. 전 회사를 끼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한 관계가 되었으니까.
길지 않은 통화에서 내 근황을 솔직하게 말하고자 노력했건만, 사실 전 회사에서 더 잘 해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더 많이 떠올랐다. 직무는 달라도 우리 같이 일을 하면서 사람냄새 많이 나게 일을 했었다. 서러운 점이 생기면 불 꺼진 사무실, 한 구석에 있는 유리문 안에서는 수다를 떠느라 불어터진 짜장면과 탕수육을 두고 사는 이야기, 회사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지.
눈이 소복소복 오는 어느 12월 겨울날, 운동화 푹푹 빠지며 귀가하고 있으면 방금 전까지 회사에서 떠들고 웃으며 지냈던 그 순간이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날도 많았더라.
우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어디를 떠나고 있었을까. 그 순간은 마치 영원할 것만 같던 시절도 있었지만 각자 갈 길을 갔다. 나는 그 시절을, 다시는 떠올리기 싫다가도 그 시절을 좋아하고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 중에 하나라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건너듣는 데, 모든 추억과 호기심의 바다를 건너 나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글쎄, 우리가 같이 지내던 업계를 떠나 새로운 업계에 발을 들이고, 그건 그거대로 마무리하고 다시 또다른 업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그 시절 알고 지내던 선배는 과장이 되고, 내가 알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어느 후배는 대리가 되고 했겠지. 직급도 올라가며 연봉도 올라갔을거라.
어쩌면 나는 그 시절 조금 더 견디고 그 회사에 있어야 했던 걸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럼에도 나는 나를 알아서 또다른 방식으로 나를 표현했을 것 같다. 전화 통화로 못 다한 이야기가 참 많다, 사업, 간병, 도전, 남들이 말하는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재기하는 그 과정 등등.
한편 늦저녁 저녁을 해치우고 발견한 부재중전화가 그대들이라서 다행이다. 이미 10여 년도 더 되었지만 열등감 투성이 인생에서 열등감을 무식하게 표출하던, 부끄러운 시절 알던 사람들의 전화였다면. 과연 나는 다시 열등감에 휩싸였을까. 경쟁에서 밀려 방황하던 그 추운 시절은 참으로 아프고 또 아팠다. 역설적이게 또 즐거웠지만 말이다.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또 어쩌면 기적이 있을지. 다시 한번 인생이 빛나는 순간들이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이 예전에 비해 훨씬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건 알겠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빨라지겠지, 그러다 어쩌면 그 세월의 흐름에 파묻혀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낼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 흐름의 속도가 몸소 체감되는 것 같아 두렵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에 지옥 끝까지 갔다가, 나이가 들어 20대는 아니지만 굼벵이처럼 다시 땅 위로 올라와 겨우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나는 잘 살고 있을까.
돈에 눈이 멀어 돈에 영혼을 팔며 일을 했던 순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인생의 장난인지 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게 만드는 운명 또한 고약하다. 하지만 여기 나 서있다. 그대도 어딘가 함께 있다.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미안하지 않고 다시금 웃으며 함께 짜장면 소스 입에 묻히며 먹던 그 시절이 짧게라도 반짝이길. 나는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