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춥지만 일을 해야 한다. 한 달 전 손톱과 손가락살 사이 상처가 생겼다. 집에 있는 약으로 바르고 휴식을 취하고 어느 정도 아물었다. 하지만 날이 추워지니 다시 벌어지고 이제는 약간의 피까지 고인다. 3만원짜리 작업화를 신고 강풍에 드러누운 나뭇가지를 단 5분 이내 고정해야 한다. 골목길 사이 맺힌 고드름, 길 위에 누가 뿌린 물인지 모르지만 살얼음이 얼어 짐을 실은 카트를 밀어 올리기가 쉽지 않다. 헛바퀴를 돈다. 밥은 어제 저녁에 먹은 게 전부, 아침은 못 먹었고 점심도 못 먹었다. 하지만 강풍 사이로 또다른 일터로 향해야 한다. 동파 되어 얼어터진 배수구로 찬물이 들어선다. 아차, 스포츠 양말을 신은 채 밟아버렸다. 유리창에 있는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해서 살짝 젖은 걸레를 들고 나왔더니 1분도 지나기 전에 걸레가 빳빳하게 얼어버렸다. 바람 한 번에 옆에 있는 나뭇가지에서 나뭇잎과 먼지, 지붕에 얹힌 눈가락이 오늘의 작업터 위로 흩날린다. 제기랄, 야외 창고에서 불어터진 손으로 빗자루와 쓰레받이로 찰나의 순간 얼어붙은 눈가락을 쓸어담는다. 회사 차량은 브레이크에서 소리가 난다. 살얼음이 들러붙은 도로에서 몇 번의 헛바퀴, 조심히 운전대를 잡고 아주 조심히 운전해본다. 가야 하는 목적지, 산처럼 쌓여있는 일더미가 머릿속을 아른거린다. 손잡이가 파손되었다 한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니 3대 7 비율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철제로 만들어진 손잡이를 원래의 자리에 어떻게 고정해야 할까, 글로브박스에 있는 본드가 생각난다. 카톡. 이번에는 파손 건이다. 창고를 다녀와야 한다. 몇 번의 구매요청 끝에 겨우 구매한 물품의 재고가 이렇게 사라진다. 아까 찬 물을 밟은 양말이 얼어붙었다. 공터에서 제자리뛰기를 통해 발에 열을 가하는 자가발전을 해본다. 전화가 온다. 손잡이가 붙기도 전에 이송을 요청한다는 메시지다. 가야 한다. 2시간 3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은 일을 1시간 30분 내로 끝내야 한다고 한다. 잠깐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래본다. 하지만 해야 한다. 말단 직급으로 손 위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하라는 터무니없는 조언에 쓴웃음을 짓는다. 계량기 뚜껑이 잘 닫히지 않는다고 한다. 가본다. 조만간 손 좀 봐야 할 것 같다. 핸드폰 충전을 깜빡했다. 배터리 20% 미만, 현장 작업 공유 차 무전기처럼 핸드폰을 사용하는 와중에 불안에 불을 지핀다. 폭풍 같은 하루, 행정 업무들이 남았지만 해 저무는 하늘을 보며 내 자리로 향한다. 10분 남짓 그 길에서 '정신승리'라는 말을 세우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쌓고 있는 것을 떠올려본다.
1. 나는 절제된 감정과 일상을 통해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잠재력을 축적하고 있다.
2. 나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컨트롤하고 해내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3. 나는 누구도 답 모르는 문제에서 답을 찾는 삶의 기술을 훈련시키고 있다.
4. 나는 극한의 환경에서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안다. 사실 지난 나날에 따뜻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느긋하게 즐기며 다소 가벼운 언행을 통해 갑질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에서든 나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성찰 없이 극한에 치닫는 일상에서 나를 소모시키면 그 삶은 탈출구 또한 없다는 것도 안다. 이런 이야기, 정신승리에 가깝지만 이런 나에게는 소중하다.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길 위에서, 현장에서 10분 정도 숨 돌릴 틈이 생기면 좋지 않은 생각도 종종 들지만 쓴웃음과 함께 너털웃음을 보낼 수 있는, 나는 정신승리하고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