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린 시절이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밤 늦게 들어오시고, 또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나의 어린 세계관에서 벗어났다 어느 순간 들어오고 다시 벗어나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한 일이었단 걸 알지만, 당시는 신출귀몰한 아버지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항상 늦은 밤 들어오실 때면 작은 컵라면을 하나 들고 오셨는데 나중에 커서 물어보니 그게 식사시간 이후 공백이 길어서 밤늦게 일하는 배고픈 노동자를 위한 야식이란 걸 알게 되었다.
컵라면은 거의 드시지 않고 새 거 그대로 들고 오셨다. 포장은 뜯지 않고 나무젓가락은 없었다. 하지만 늘 식탁 위에 있었고 동생이나 나나 둘 중에서 배고픈 사람이 먹었다. 늘어지는 오후 시간 하나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배도 부르고 할 일이라곤 낮잠이나 실컷 자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집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언젠가 돌아오리라 무심코 믿고 있었다.
나이가 드셔서 한 번 크게 아프신 이후로 라면은 거의 입에 대지 않지만 가끔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하면 어김없이 전기포트에 라면물을 올리셨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나지막히 3분만 있으면 된다고, 혼잣말을 하신다. 기운이 여린 어른의 모습, 그 안에서 라면은 익어간다. 스프는 절반 정도만 넣지만 맛있다고 다 드신다.
언젠가 본가에서 어김없이 새 컵라면 하나를 챙겨주셔서 컵라면을 가져왔다. 찬장에 넣어두고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고 얼마나 흘렀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뛰어다녔다. 직무 특성상 앉아서 일을 하는 날도 있지만 현장에서 보내는 일도 많다. 다른 팀과 다른 점이다. 시간이 공평하다는 말이 참 얄궃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현장일은 일대로 하면서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만들어야 하는 자료는 마음과 달리 허접한 게 눈에 보이고 어디서부터 다시 손을 봐야 할지 모르는 상황. 남들과 달리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변명을 해보고 싶지만 그저 착잡한 마음만 든다. 상의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없다니, 다른 팀들이 동료들과 회의하는 모습에서 얼른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피한다.
속상한 마음, 서운한 마음, 공허한 마음, 상실감이 큰 마음. 복잡한 감정이 복받쳤나보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잠시 나 자신을 봤다. 그 날은 여전히 늦지만 집에 와서 작업을 이어갔다. 밤 11시 넘은 시각, 옷도 벗지 못 한 채 배고픔도 잊고 노트북을 열심히 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전송한다. 도무지 이 시간에 밥을 해서 설거지까지 하고 잠자리에 들 자신이 없다. 뭐가 없을까, 찬장에 잊고 지낸 컵라면이 보인다.
도시락 컵라면. 물을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 휘날리게 날라다닌 키보드를 멍하니 본다. 3분이면 돼. 문득 나랑 라면을 기어코 먹어준 그가 떠오른다. 속상하다. 컵라면을 챙겨준 거, 컵라면 사먹으면 된다고 우겼던 그 날의 내가 조금은 밉다. 인생 참 맵고 쓰다. 컵라면을 끓이며. 많은 감정이 든다. 쉽사리 잠자리에 들기는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