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아닌 진실, 우리는 어른이다

by 스톤처럼

드디어 한 달 넘게 준비하던 골칫덩어리 프로젝트 하나가 첫 발을 내디뎠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까지 문제의 연속이라는 디폴트값을 얻었지만 어쨌든 시작을 했다는 점에서 그 간에 스트레스에 휘둘린 나 자신을 위해 하루는 나와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보냈다. 참 하루가 길었다. 위에서 말한 시작을 알리던 오전을 기점으로 점심시간 이후 줄곧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곳저곳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이웃집들 불까지 다 꺼진 이 시간에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니. 오늘 하루 잠깐이나마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0 가까운 나이에 옛날 추억의 감성 살리고자 불은 다 끄고 영화 한 편을 봤다. 영화 내용은 역할 대행업체 무대로 펼쳐나간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생판 모르는 클라이언트 의뢰를 받고 그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현실에서 '진실 아닌 진실'을 연기해 주는 영화다. 영화 속 에피소드 한 가지는 유명 연극인이 노년이 되어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연극인 당사자도 모르게 취재 기자로 변장해 접근한다. (물론 이 에피소드의 시작은 연극인 집사의 의뢰에서 시작된다) 유명 연극인의 과거 명성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려는 숨겨진 목적을 가지고 인터뷰에 응하지만 (진짜 인터뷰는 아니다, 가짜 인터뷰다), 집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연극인이 바라는 자유와 소원 모두를 들어주게 되는 뭐 그런 영화다. 영화 설정상 취재 기자 직업 또한 가짜, 주연들이 영화에서 연기하는 모든 역할 또한 '가짜'이다. 그저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연기한다는 것, 이 것만이 진짜다.


설명이 지루한 건 나도 잘 안다. 많이 노력했지만 설명하는 재주는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여하튼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도록 배우고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왔지만, 너도나도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진실 아닌 진실'이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진실이 무조건 옳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세상을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지나 보니 진실이라는 것이 '진실 아닌 진실'보다 가혹하고 매서울 수 있다는 걸 알겠다. 무조건이 적용되는 건 없지만 속된 말로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게 나은 순간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진실 아닌 진실이 '진실'이 아닌 것이라는 게 밝혀질까 봐 두려워 세상과 사람과 단절하고 살아가는 건, 마음의 빗장을 잠그고 살아가는 건, 또는 누군가가 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피한다는 건. 너무나도 많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너무나도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싶다.


흔히 선의의 거짓말, 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이건 뉘앙스가 조금은 다르다. 진실을 알면서도 진실이 아닌 진실을 선택하는 성숙함이다.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인생살이의 원칙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도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든 진실을 말할 필요도, 모든 진실을 알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가는 게 원래 그런 거라. 오늘은 여기로 마음이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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