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보다 이별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많은 이별을 해봤지만 이별은 늘 쉽지 않다. 특히 그 또는 그녀와 계획된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 식사, 그리고 마지막 배웅이 되는 시간이 되면 떠나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우두커니 서있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나 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동체, 그 안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 또 그 안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다음에 만남 시작과 만남 거부 사이 고민이 더해지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하루하루 지나 '이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겠다' 싶은 순간 이별이 찾아온다.
이별은 남은 사람의 몫. 10대 시절 친한 친구라고 여긴 녀석이 어느 날 비행기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가버렸을 때 나는 배웅하지 못했다. 첫사랑은 짝사랑만 열심히 하다가 표현은 못 하고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만 봤다. 항공사 근무 당시에는 해외 지사 직원에서 친분이 생긴 이가 한국을 방문하고 다시 돌아갈 때도, 반대로 그 나라에 가서 함께 웃고 떠들다 마지막 만남 또한 눈치채지 못했다. 간병 이후 다시 일어서는 순간 근무했던 방문객 99% 외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많은 체크아웃에 먼 하늘을 올려다본 일이 많았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 또 기약 없는 약속에 언젠가 우리는 볼 수 있을 거라는 이별에 아려 무작정 길거리를 걷기도 했다. 수많은 이별은 그렇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익숙한 사람으로 무뎌지게 만드는 게 싫다.
언제나 이별, 누군가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 믿어온 걸까.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동네로 이사를 와서 살기 시작했건만, 최근 수개월간 호흡을 맞춰오던 동료의 약속된 이별 앞에서 다시 그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배웅을 해주고 말았다. 또 떠나보내고 말았다.
다가가고 싶으면 다가갈 줄 알아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왜 발은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걸까. 요즘 흔히 떠도는 말로 MBTI 특, 혈액형 특, 별자리 특. 나는 내 마음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방을 만들고 있다. 각 방은 어떤 계기로 알게 된 사람이든 한 사람당 한 개씩 배정하고, 추억도 보관하고 하는데 그게 대부분 마음 속 일기장이라는 게 문제다. 서있지말고 앞으로 걸을 수 있기를, 마음이 아픈 제자리걸음은 아니기를, 적어도 한 번이라도 뒷모습은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