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식사

by 스톤처럼

사실 제목만 보면 기분이 대체로 좋아지는 단어들만 나열되어 있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나 또한 풍요로워지고 풍족해진다는 전제가 암암리에 드리워있다. 이런 전제에 지배되어 그랬던 걸까? 지금까지 그리 많지 않은 여행기를 돌아보면 여행지에서는 충만하게 즐겨야 그 여행은 제대로 즐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누군가 이렇게 먹었으니 나도 이렇게 먹어야 하는, 한 마디로 '무언가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식의 생각에 지배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업무 연장선에서 집을 벗어난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 복잡한 숫자 계산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멋들어진 업무와는 거리가 다소 멀지만 나는 내 역할을 하기 위해 기꺼이 그날은 '집-직장' 루틴을 파괴하였다. 집에서 나왔지만 업무처를 거쳐 돌아온 장소는 어느 호텔. 오후 6시 지나 체크인을 했으니 '호텔에 가면 뽕을 뽑아야지' 정신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랜만에 이왕 호텔에 왔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자 주변 맛집부터 (집에서는 사용을 하지도 않는) 배달 어플을 통해 평소 유튜브에서 들어본 맛집을 검색했다. 신발을 신고 호텔을 나와 거리를 서성였지만 결국 향한 곳은 오래된 허름한 백반집이었다. 출장을 빙자한 호캉스, 거창한 수식어는 여기서 꺼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공깃밥 추가 시켜서 먹는 그 밥은 꿀맛이었다. 만약 옛날이라면 나는 기름진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며, 여기에 숙소에 가서 먹을 디저트를 사서 과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소박하지만 일상적인 정감이 담긴 백반으로 만족했다. (숙소를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렸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적은 양의 물을 제공하는 호텔 사정을 고려해 1.5리터 물을 구매한 게 전부다)


잠자리에 드는 일만 남은 시간, 창문 바깥을 보면서 잠시 멍을 때리고 있으니 사실 나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렇게 맛있는 밥과 언제든 손 닿는 거리에 대기하고 있는 '물'이 전부라는 걸, 이 단순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밤은 도시를 잠재우고 나 역시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책 한 권 정도 가지고 갔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눈꺼풀은 그리 인내심이 좋진 못 했다)


아침에 일어났다. 그것도 평소보다 1시간은 더 빠르게. 천장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몸이 가볍다, 잠을 푹 잤다. 거울을 보니 피로와 핏줄이 교차한 눈은 온데간데 없고, 흰색 눈자위가 말똥말똥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 피로가 싹 가시는구나. 얼마 만에 이렇게 푹 자보는 것인가. 분명히 몇 시간 뒤면 다시 회사로 가야 하는 처지, 하지만 나는 말끔히 피로를 씻었다.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알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매일 내가 잠이 드는 나만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잠을 자보는 것이 의외로 생각하지 못한 피로회복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국내외 여행이든 호캉스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박한 식사 수준에서 행복을 느끼는 행복 역치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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