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심야영화 후기

by 스톤처럼

오래간만에 심야영화 한 편을 보고 왔다. 사실 요즘 같이 재미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한 시대, 어쩌면 먼 거리에 있는 영화관까지 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수 있다. 영화관이 주는 낭만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연히 나의 인생 또한 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소 재미없고 단조로운 일상이 흑백처럼 느껴지고 특별한 취미 또한 없어 나의 하루가 점점 무성영화 한 장면처럼 번해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작년 언젠가 사내 이벤트로 당첨된 영화관람권 한 장이 생각났다. 밤 8시 10분 전, 뒤늦은 예약을 하고 추억도 많은 명동 한복판에 있는 CGV 명동 다녀왔다. 구식 MP3 플레이어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카톡 업데이트 화면을 스크롤하는데, 나의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누군가 프로필 업데이트 소식을 접했다. 이미 오랜 전 일이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특히 어떤 이유로 만나게 된다면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과거로 흘려보내기 위한 대화가 오갈 거라는. 뭐 그런 생각은 해봤다.


유독 썰렁해 보이는 영화관 복도 지나 5관 영화관, 숨 죽이고 영화 < 만약에 우리 > 쭉 보고 나왔다. 푸석푸석한 피부에 두꺼워진 손, 동서남북 아저씨 스멜이 물씬 풍겨 나는 요즘에 색깔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씁쓸한 미소만 연거푸 품어대다 영화만 보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 속 모든 설정이 10년이 넘어서야 당시 나를 돌아보도록 만드는 영화였다. 설정들이 살아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


1.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던 한 사람으로서 '사랑의 부족'으로 현실을 포장하던 날들이, 조금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면, 정확히는 나 또한 조급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2.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마음속에서는 그 답을 알고는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지 못하여서 나는 겁이 많지 않았나. 만약 솔직했다면 지금은 달랐을까. 솔직할 수 없는 '미성숙함'에 오히려 아름다웠다고 기억을 해야 할까.


3.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날이면 애먼 사람에게 괜히 감정풀이를 하진 않았나. 그들은 그저 옆에 있었을 뿐인데, 나의 초라함을 내가 아니라 그 사람 탓으로 책임을 던지진 않았을까. 지금 돌아보면 그런 책임전가는 가족이 아니라면 받아주기란 불가능한 유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고.


4. 누구나 이런 사연 하나쯤은 가슴에 묻고 산다는 말에, 나만 특별하지 않음을 다시금 알게 되고. 나이는 들었지만 지금도 집 바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말은 안 했지, 이런저런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위안이 되고 한편으로 그 이야기 또한 들어보고 싶고.


5. 지난 시절 미래에 대한 불안,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그 순간에 온전히 경험하지 못해 지금은 더욱 아쉬운 (그럴 수 없으니까).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어리석은 선택을 다시 반복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기어코 사고 싶다.


6. 부모 빽, 돈 빽. 또래보다 성공에 가까운 지인들을 보고 왜 이리 혼자서 마음앓이했던가. 남들보다 조금 늦는다고 혼자서 마음병을 갖고 지냈는가.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당시 조금은 그런 순간들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등등. 이 모든 생각이 몰려와 집 돌아오는 길에는 운동화를 끌면서 왔다는. 시간의 겹이 올린 골목 담장 아래 결국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겠지만 과거 그 사람을 만난다면 그래서 몇 마디 섞을 일이 있다면 은호와 정원처럼 과거는 과거대로 흘려보내는 온전한 만남이 있기를. 그러기 위해 그 순간에 만큼은 솔직하고 노력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나 그런 사연 하나쯤 가슴 속 묻고 산다니,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경계심과 회의주의를 물리고 조금은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꽤 길었던 마음 아픈 시간들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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