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척'하던 30대가 바라는 공부, 학교를 떠나다

아, 진작 왜 이렇게 하지 못 했지? 지루하기는커녕 신선한데?!

by 스톤처럼



200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잠깐 추억여행에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기억나세요? 반에 보면 최소 1명은 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는 친구, 매점 가자고 하면 시간이 아깝다고 은근히 튕기는 귀여운 친구, 성격이 모나지 않았지만 공부만 아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 기억나시나요?




모범생. 우리는 그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선생님에게 잘하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적정 수준으로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모범생에서도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한 가지 유형은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한 성적을 얻어내는 케이스입니다. 아마도 사전적인 의미에서 "모범생"에 가장 가까운 유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에 대한 노력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케이스, 사회적 관점에서도 "모범생"을 대표하는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유형은 상기 유형과 같이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정말 열심히 합니다. 다른 학생이 바람도 쐬고, 매점에서 빵을 사 먹으면서 사회성을 기를 때, 그들에게 쉬는 시간이란 '공부' 연장선인 시간 중 하나일 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 친구, 공부는 잘하냐'라고 묻는다면 '잘해요'라는 답변보다 '진짜 공부 열심히 해요'라는 대답이 나오는 케이스입니다. 즉, 공부는 하지만 최상위권은 아닌, 노력 대비 결과가 좋지 않은, 어른들의 말을 빌리면 "효율성"이 다소 떨어져 보이는 유형입니다.




두 번째 유형의 학생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해보는 노력은 존중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게 있고, 그들이 하는 노력은 또 다른 강점을 찾을 수 있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모범생의 두 번째 유형에 가까운 학생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와 집에서 맹목적으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쉬는 시간에는 공부시간으로 여겼고, 학생의 도리라고 배운 '공부'는 집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최상위권, 아니 상위권에 진입하기에는 어딘가 애매하였습니다.




특색이 없는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친구 앞에서 말조차 붙이기 어려워서 피했던 친구, 존재감조차 없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러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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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감과 두려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의 정점은 고3 수능 성적표를 받은 직후였던 것 같습니다. 수능 성적은 평소처럼 노력 대비 저조하였습니다. 공부는 나와 맞지 않구나. 수험생활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책 안보다, 책 밖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던 20대. 직장에 들어가고 시간이 흘러 30대 초중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직장에 들어와서 책을 보는 시간이 조금씩 늘긴 했지만, '나 독서 좀 합니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였습니다.




재미없어도 하루 10페이지씩, 아니면 적어도 5페이지라도 읽었더니 웬걸. 책 내용에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단지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책에서 좋은 내용을 읽고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이게 정말 될까?'라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눈에 띄는 변화'가 줄어드니 흥미를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동안 책을 내려놓은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마치 고3 수험생 시절 남모를 스트레스로 공부를 내려놓았듯이 말이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범생 '척' 했던 아바타가 인생에 끼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반짝하는 이벤트로 다시 책이 좋아지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일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또 다른 재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이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다시 책을 내려놓을 시기가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번 포기하더라도 다시 읽을 것입니다. 오늘은 모범생 '척'하던 30대인 제가 어떻게 독서하게 되었는지, 기억에 남는 변곡점들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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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하는 순간만큼 내 안에 있는 정체성을 바꾸자



처음부터 표현이 엉뚱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본다고 앉아있던 과거를 반추하면 '책'이 그다지 필요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독서는 일종의 킬링타임용 취미로 여겼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글자는 글자대로, 나는 나대로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책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 글자만 읽었습니다.



하지만 절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제 세상에서 홀로서기해야 한다. 아니면 나는 생존할 수 없다" 등)을 만드니 '읽는 사람'에서 '적극적으로 배우는 사람'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교훈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활용해야만 하는 이야기였고, 달려들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가 되었습니다.




2. 독서하는 시간에는 에너지를 끌어올리자



책을 펼쳐도 잠들어버리면 자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평소 잠이 많은 저는 어려운 책을 펼치면 베개가 필요 없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배우기로 결단했는데, 몸과 마음이 동상이몽이면 금세 지루해집니다.



음악이든, 물이든, 서서 읽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보세요. 처음에는 집중력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책하지 마시고, 읽는 내용의 단 10% 라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세요.




3. 독서하는 동안 나는 '독자'가 아니라 '저자'이다



독서를 통해 성장하고 싶다면 흠뻑 빠져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로 몰입해야 할까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독자' 포지션이 아니라, '저자'로 변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책을 두고서 '저자' 또는 '독자'로 구분하여 존재한다면 몰입의 가능성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련과 갈등, 인생의 슬럼프 등 저자가 말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도대체 얼마나 타인에게 무시당하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을까? 과연 내가 같은 상황을 마주하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오감을 활용하여 저자로 몰입하는 질문은 다양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상하세요. 잠시라도 '독자'로서 나 자신을 내려두세요.




4. 독서는 처절하고 간절한 행위다



반복, 반복, 그리고 다시 반복. 적어도 3번 이상 읽으면 책 내용은 허구 맹랑한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실 것입니다. 반복과 함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새 책처럼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내 생각을 메모하고, 인상 깊은 구절은 밑줄을 그으세요. (대여한 책이라면 독서노트 활용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독서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깔끔하게 읽기" "밑줄 그으며 읽기" 둘 다 해본 결과 "밑줄 그으며 읽기" 스타일이 더 좋았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언제든 원할 때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5. 나 자신에게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한때 책 구매에 중독된 적이 있었습니다. 신간이 나오면 '반드시 읽어야지'라는 느낌에 지배되었습니다. 새 책이 쌓이면 쌓일수록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읽기'에만 급급한 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책 구매' 중독자로서 감히 말씀드리면 책만 읽는다고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습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총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독서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책에서 배운 교훈을 실천하는 시간을 늘려보세요.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면 그 시간은 꼭 사수하세요.



스스로에게 시간을 준다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3권 읽는 것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책 1권을 읽더라도 실천의 시간을 확보한다면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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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0년에 걸쳐 내려놓았던 배움은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떠난 공부는 신선한 느낌 그 자체였습니다. 고3 수험생활이 끝나고 노량진 육교 위에서 모든 공부를 내려놓겠다고 생각했던 저녁.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성적까지 좋은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만,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이제는 저를 위한 세상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릅니다. 동시에 현실은 곧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현실에서는 선생님이 아니라 '스승'에게 배우고, '책'에서 조언을 들으며, '실천'에서도 교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모범생 '척'하던 저에게 현실은 살아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30살을 넘은 저는 당연히 틀리고, 개선하고,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더 배우고, 더 왕성하게 실천하고 싶습니다.





현실이 곧 학교다. 의무교육을 떠난 모든 분, 파이팅입니다. 미국 동기부여 연설가로 유명한 '레스 브라운 (Les Brown)' 연설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5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정신지체가 있는 아이로 분류되었고

4학년으로 강등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낮은 학년에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저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교실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와중,

한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칠판에 받아 적어보렴."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냐고 물었죠.



"저는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니까요."라고 답하자

그는 괜찮다며 그의 말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는 왜냐고 물었죠.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저에게 다가와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절대로, 두 번 다시 그런 이야기는 하지마렴."


"세상이 너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의 현실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단다."




출처: It's Not OVER Until You Win! You Dream is Possible (Les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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