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만은 무라카미 하루키, 현실은 30대 평범한 아저씨
오늘도 달리고 왔습니다. 이제는 산책하는 주민분들 눈치를 덜 보게 되었습니다. 평생 운동으로 달리기와 걷기를 정하였습니다. 걷는 건, 뭐 시장에 가나 마트에 가나 맨날 하는 것이니 눈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달리기였습니다. 동네 한 바퀴 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걷는데 혼자 달리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습니다. 탄탄한 허벅지와 역삼각형 몸매는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준의 달리기 실력을 가지지 않았는데. 어차피 남들이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왜 눈치를 보는 걸까요?
처음에는 동네 주민만 보이면 멈추고, 안 보이면 달리고를 반복하였습니다. 달렸다가 쉬고, 쉬었다가 달리기를 반복하니 오히려 더 힘에 부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두 번 달리기 시작하니 그제야 조금씩 주민분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흘려버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마음만은 무라카미 하루키, 현실은 빠른 걸음 수준으로 달리는 30대 아저씨. 두 다리만 있으면 평생 달릴 수 있는 달리기가 좋았습니다. 저는 참 이상합니다. 몇 번이고 헬스장을 가봤지만 저하고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속도감이 있고 야외에서 하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이렇게 느리지만 달리는 것. 아주 짧은 시간을 달려도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다시 하루를 버텨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적당히 땀을 흘리고, 어느 정도 몸에 긴장감이 느껴지고, 멈춘 줄 알았던 심장이 빠른 호흡을 반복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 매력이 있습니다.
달리는 용기를 얻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이벤트는 아니지만 말이죠. 신입 프리랜서가 느끼는 프리랜서 일상은 일종의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가할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가하고, 바쁠 때는 죽겠다 싶을 정도로 바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일이 몰아치는 바람에 그날은 아침에 달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야간 조깅을 선택하였습니다. '오늘은 쉴까?' '이러다 조깅을 못할 수도 있겠다' 소파에 앉아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분 내로 준비해서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야간 조깅인데 아침보다 산책하는 주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소심한 마음이 꿈틀 되었지만 요리조리 그 사이를 달렸습니다. 그때 반대 방향으로 조깅하는 분을 지나쳤습니다. 그분은 헐떡이면서 반대 반향으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다른 곳에서 달리는 분들처럼 달리고 싶어 졌습니다. 이상하죠? 혼자 달린다고 눈치를 봤었는데요, 눈치가 사라졌습니다. 다시 그 분과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저는 그 분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달리는 코스도 다르고, 저보다 잘 달리시는데. 그런 분이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니 없던 힘도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걷는 사람 가운데 1명의 달리는 사람. 아니지, 이제는 이 사이에서 달리는 사람은 2명. 오예.
기분 좋게 평소보다 한 바퀴를 더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무리 운동으로 한 바퀴를 걸었습니다. 빨리 달리지 못해도, 느릴지라도 언제나 목표는 완주. 게다가 한 바퀴를 더 돌았다니. 눈치도 덜 보고. 좋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책에서 요즘 따라 생각나는 문장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프리랜서의 일상처럼. 방구석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고 싶은 열정이 현관만 넘으면 사그라지고 길 위에서 눈치만 볼 때. 왠지 모르게 이 문구가 생각납니다. 지금 내가 불안하다고, 모두와 반대로 간다고 두려울 때. 어쩌면 행복이란 것을 잊고 지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 읽어보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면, 나는 '오늘은 달리고 싶지 않은데'하고 생각했을 때는 항상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너는 일단 소설가로서 생활하고 있고, 네가 하고 싶은 시간에 집에서 혼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만원 전철에 흔들리면서 아침저녁으로 통근할 필요도 없고 따분한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다.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비하면 근처를 1시간 달리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는가? 만원 전철과 회의의 광경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의지를 북돋아 러닝슈즈의 끈을 고쳐 매고 비교적 매끈하게 달려 나갈 수 있다. '그렇고말고.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야'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하루 평균 1시간 달리는 것보다 혼잡한 전철을 타고 회의에 참석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할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 것뿐이다.
오늘은 달리기 일지를 남겨야 겠다.
1. 달리기 1시간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2. 속도가 느리다고 조바심 내지 않는다.
3.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달리고 있다.
4. 어차피 사람들은 달리는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어야 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