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빗물에 기어코 몸을 내주고, 얼마전 사고를 당해 100% 컨디션조차 유지하지 못 하는 내 자신을 기필코 내주리라. 엎친데 덮친격 감기몸살까지 앓아 목이 잠기고 콧속살이 부풀어 입으로 숨을 쉬는 걸 반복하는데도 이 호우를 온 몸으로 맞으며 일을 한다는 게 어찌 기쁜 일인지.
갓길에 회사차를 세워두고 케데헌 열풍에 온 길을 가득가득 채우던 관광객이 하늘에 구멍 뚫린 듯 쏟아내는 비바람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는 이 길에서 나는 어찌 웃고 있는 걸까. 저 멀리 '왜 우비가 없어?' 메아리 치듯이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거중한 습기를 뚫고 동료를 알아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가. 우비조차 챙기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내 자신을 내던지는 이 즐거움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비 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절을 앞두고 산소 벌초하러 수술과 입원으로 몸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아버지가 우산도 없이 집을 나섰다는 소식이 강과 산 건너 저 멀리서 전해졌고. 그 산소가 있는 공동묘지가 어떤 지형인지 알기에 혹여나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주름살 나잇살만큼 달고 일을 시작했던 아침이 기억나는데.
평소 핸드폰 두고 산책을 다니는 아버지, 그래도 먼 길을 올라 핸드폰은 챙기셨다 하니, 이제는 전화를 받으실 수 있는 어머니 통해 1시간 단위로 당신과 당신의 낭군 안부 물어.
하필 내가 직장에서 약속한 바가 있으니 내 시간을 내어주고 일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지만 이런 날이면 차라리 쉬는 날 당신의 아들이 벌초를 대신 하러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면 안 되냐는 푸념도 해보지만. 이번 벌초에서 전화를 많이 하지 말아달라는 아버지 부탁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들이 어머니에게 현실살이 푸념 늘어놓듯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어린 아들이 되고 싶은 게 아닐련지. 머나먼 길을 따라 다시 돌아올 거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은 아버지 연락을 기다려보는.
어린아이가 부모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우는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산소로 떠난 아버지의 마지막 안부를 물은지 3시간이 지나서일까. 하산해서 귀가하는 길에 연약한 몸을 실었다 하시니, 이 폭우처럼 내 걱정 또한 한시름 덜어내는 거 같아.
감기몸살에 비 맞는 거 좋지 않다는 사실 모르는 나이 아니니, 사고로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기쁜 마음으로 일을 이어할 수 있으니, 그제야 1시간 단위 연락이 아닌 귀가 후 집 도착하면 어머니, 당신이 나에게 카톡이라도 하나 남겨주면 감사하리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폭우 속으로.
우비도 없이, 우산도 없이.
이미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쁘게 젖어들 수 있겠서리.
대답해본다.
"우비요? 깜빡했어요. 아래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