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침저녁으론 쌀쌀해졌습니다. 여름이불 덮고 자는 것도 조만간 조금은 푹신한 가을 이불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청명한 하늘 아래 홀연히 길을 지나는 사람을 살펴봅니다. 동네축제가 있어 사람들의 얼굴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가을 나들이 즐기는 사람들 사이, 차바퀴 옆에서 기름떼로 옷은 더러워졌지만 잇몸 보이게 웃고 있습니다. 내일 위한 정비하던 중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불과 3년 전까지 해도 저 멀리 보이지 않는 허황된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현재 내 주변을 바라볼 수 있어서 기분이 색다릅니다. 이렇게 공짜로 쉴 수 있는 이 순간조차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중에서 최고의 기쁨을 선물받은 것은,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만든 밥 첫 숟갈을 떴을 때인 것 같습니다. 처음 마트에 가서 500g 쌀을 사보고, 어떻게 밥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유튜브 찾아 쌀알을 씻어보고, 투박하지만 애지중지 내 밥이 되어줄 쌀들을 밥솥으로 넣는 그 순간. 혹시나 내가 잘못 눌러서 쌀을 날리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취사 선택을 하고 칙칙폭폭 소리가 나는 밥솥에서 밥이 완성될 때까지 빤히 쳐다보고 있었더랬죠.
같이 먹을 수 있는 반찬도 준비하고, 요리가 필요하면 다른 요리도 해서 밥이 완성되면 같이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밥 되는 그 시간 밥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밥주걱으로 푹신하게 담은 밥이 그릇에 담긴 순간. 처음으로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만드는 밥. 약간 질펀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소중한 밥. 좋아하는 멸치볶음, 연두부, 김치 꺼내 밥 위에 고스란히 올려 입 안으로 넣는 그 순간. 와 소리와 함께 이 세상 어디에서 먹는 맛집보다 더 맛있는 나의 집밥 첫 도전기,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나서...
설거지까지 마치고 거실의자에 앉으니 나의 부모, 당신이 왜 집밥을 좋아했는지 슬금슬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친구를 만나 외식을 한다는 20살 아들이 바깥에서 놀고 있을 때 진짜 맛있는 밥은 당신이 만들어주는 밥이었습니다.
철없는 21살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밑반찬 2가지에 가볍게 집밥으로 식사를 떼우는 당신을 보고서, 맛있는 음식 먹고 싶다고 투정부리던 모습에, 지금 돌아보니 웃음만 나옵니다. 집밥이 이렇게 맛있는 건데..
철 좀 들었다 싶었는데 23살 아들은 군대 가기 전으로 돌아가 철없이 지냈습니다. 화려하고 값진 음식에 영락없는 겉멋만 들더니, 지금 돌아보니 어처구니 없구나 싶습니다. 뭐가 좋다고 집밥을 외면하던 걸까..
어느덧 거주지 근처 중고등학교 앞을 지나면 학생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딘가 뚱하고 어딘가 아직도 철이 없고 어딘가 부실해, 당신을 위한 우산으로는 우산의 윗살, 받침살이 한 두 가닥은 빠져있는. 얼굴은 넓어지고 좀처럼 살 또한 빠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되었습니다.
집밥을 좋아하고 집밥을 만드는 것도 좋아해 바깥에서 잘 먹지 않는 그런 사람, 난생처음으로 집밥을 만들던 날 질펀하다는 후기에 '다음엔 더 잘 할 거야'라고 말해준 나의 부모, 당신이 있어 애꿎은 투정은 뒤로하고 밥을 크게 떠서 입에 밀어넣었어요.
가끔은 난생처음 집밥을 했다고 했던 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군 입대 하던 날, 무뚝뚝한 아버지 당신이 뒤를 돌아 소리없이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고 했어요.
작년 말부터 어머니 당신은 음식 사진이라곤 찍지 않던 분께서 집밥이든 아들이랑 나가서 먹는 밥이든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삐뚤빼뚤한 사진으로 초점도 맞지 않았지만 이제는 핸드폰 돌려 가로로도 세로로도 찍을 줄 아는 멋진 사진가가 다 되었습니다. 매일 통화에서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물으면 사진을 보여주었죠.
나도 자극을 받았습니다. 나도, 노력하려고요.
며칠전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한석규 배우 김서형 배우 주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드라마 클립을 봤어요. 정주행한 건 아니지만 몇 편의 클립을 보고 전체적인 내용을 그려보니 한석규 배우가 맡은 역할에서 많이 공감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요리, 그거 나도 좀 해보고 싶었어요.
아픈 이후로 연신 챙겨주지 못 해서 미안, 예전처럼 음식 간을 못 해서 미안. 그 미안한 소리를 듣는 대신 내가 나의 부모, 당신에게 집밥을 해줄 수 있는 수준까지 '집밥 실력' 늘리기로. (어쩌면 드라마 속 마트 직원처럼 나에게도 그런 은인이 나타날지도 모르죠)
조금은 짜고, 조금은 싱겁고, 조금은 아니, 어쩌면 당신이 보는 음식들이 다 아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맛있는 집밥 식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맛있는 집밥, 내 힘으로 내 손으로 만들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