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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Apr 30. 2018

꽃이 추워, 집에 가야 해

-27개월 아가의 우주

우리 아들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빠와 대화합니다.


길가에 꽃이 피어 있네요.

"아들, 예쁜 꽃이야. 우리 아가처럼."


그런데 딴 소리를 합니다.


우리 아가, 율

"아빠, 더것(저것) 바바."

아가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파트 옆산에 키 큰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빠, 바담 툼퉈."(번역기-바람이 춤을 춰!!)


아~ 하고 아이의 그 말에 놀라고 있는데, 한 마디 더 추임새를 넣네요. 이렇게요.


"아빠 꽃이 추워, 집에 가야 해."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는 바람이 춤추고 있으니, 꽃들이 추워하고, 그래서 집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누가 춤을 출까요? 나무가요? 아니면 꽃이요?

누가 집에 가야 하는 걸까요? 꽃이요? 바람이요?

누가 추운 걸까요? 아가가요? 아니면 나무들이요? (아빠는 안중에도 없는거뉘~ㅜㅜ)


아가의 우주에는 누가누가 사는 것일까요?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이러고 놉니다.

풍선 잡기 놀이하면서 거실 청소까지 해주시는 우리 아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요?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아이에게 다가올 때마다 연한 감각들은 신기한 융합 반응이나 배치를 달성하는 것 같습니다. 감각이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철학자 나부랭이인 아빠는 절대 그걸 좇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잠자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했던 말들을 생각하고 어떤 시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요, 찾아보니 제가 예전 예전 대학 1학년 때쯤 읽었던 시였습니다.


어느 나무나
바람에게 하는 말은
똑같은가 봐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바람 불면 몸을 흔들다가
봄이면 똑같이 초록이 되고
가을이면 조용히 단풍 드나 봐

- 문정희, <나무가 바람에게>


그리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유명한 그 구절도 떠올랐지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세찬 바람은 내 책을 여닫고,
파도는 분말로 바위에서 마구 솟구치나니!
날아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버려라
삼각돛들이 모이 쪼던 이 조용한 지붕을!

 

그런데 이런 시어들도 아이의 저 초롱초롱 빛나는 단어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정희의 시는 너무 간드러지고, 발레리의 언어는 너무 과장되어 있어요. 물론 두 시인의 시는 그 자체로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다만 율이의 언어가 가진 을 표현하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이리저리 궁싯거리다가 보니 심지어 정말 오래된 이 노래도 생각이 나더군요. 아들이 "꽃이 추워"라고 했을 때 그리고 "집에 가야 해"라고 했을 때, 그 정말 아리송한 감각의 무늬가 이 노래의 파문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물론 노래 가사는 80년대 처연함과 희망이 갈마드는 전형적인 민중가요풍이지만 아가가 발음하면서 전해진 그 감각이 이런 '기분'을 돋우는 것이 아닐까라는...


문부식의 시를 노래로 옮긴 '꽃들'이라는 노래입니다. 율이가 살아갈 세상의 서정은 이렇게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노래의 이미지도 아가의 단어들과 비교해 보면 그저 변죽만 울리고 슬며시 도망가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명징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멜로디와 가사가 너무 앤틱해서 아이가 혀끝으로 내뱉은 싱싱한 발음의 신체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아!!! 그런데 하나가 더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불교 선사인 '혜능'의 이야기입니다.

혜능의 '풍번문답(風幡問答)'  고사를 그린 그림입니다. '풍번문답'이란 '바람과 깃발의 문답'이라는 뜻이지요.


스승인 '홍인'의 법을 전수받은 후 숨어서 수행하고 있던 혜능은 남해현(南海縣) 제지사(制旨寺)에서 인종(印宗)법사를 만났는데, 인종이 절에서 나와 영접해서 절로 모시고 들어갔다. 인종은 원래 경론을 강하는 강사였다. 어느 날 마침 경을 강론하고 있는데, 비바람이 세차게 일어 깃발이 펄럭이니 법사가 대중에게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어떤 이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어떤 이는 깃발이 움직인다 하여 제각기 다투다가 인종에게 와서 증명해 주기를 바랐는데, 인종이 매듭을 짓지 못하고 오히려 행자인 혜능에게 물었다. 그러자 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인종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움직이는가?’. 혜능이 대답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인종이 혜능에게 상석(上席)을 양보하였다.
- [조당집] 중


이제야 조금이나마 아이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바람이 춤춘다고 한 것은 바로 아이의 마음이 춤을 추기 때문이 아닐까요?


꽃이 춥고, 집에 가야 한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의 마음이 그 꽃이 되었고 이미 집에 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던 '나' 또한 나무와 같이, 바람과 같이 춤을 추고, 꽃의 추위를 느끼고, 그로부터 아이가 겪었던 감각의 변화가 아빠의 굳어있던 감각마저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혜능의 이 이야기를 바람이냐 깃발이냐를 따지는 어리석음을 질책한 것이라고 새기더군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건 학자들이 그저 자기들 좋으라고 한 해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저 자리에 울아들이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혜능의 말을 단박에 받아치면서,


다 움직이는 거야, 나무도, 바람도, 꽃도, 율이도.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집에 가자"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에 뭔가 깨달은 출가한 스님들이 모두 집에 갔을 수도)


27개월 어린 아들의 법문은 너무 깊고 깊어서 그 생각들을 다 퍼올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아가의 언어가 전하는 느낌들을 소소하게 간직하면 될 것 같아요.



울아들 빡빡이 동자승이었을 때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아가의 말을 조용히 읊조려 보시면 어떨까요? 마음에 슬몃 물무늬같은 미소가 번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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