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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Jun 30. 2018

신은 아실거야!

- 혁명사#2 혁명의 고전, 1917 러시아


이번에 살펴볼 혁명은 ‘러시아 혁명’입니다.

지금은 이 혁명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요. 


그리고 어떤 사회역사적 조건 하에서 일정한 필연성을 가지고 발생했는지 연구한 논문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여기에 노마가 다른 이론적 담론을 덧붙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이 혁명의 주체와 과정을 분명히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좌) 망명 중 변장한 레닌의 모습, (우) 러시아로 돌아와 연설하는 레닌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이 쓴 『민중의 세계사』(A People's History of the World) 7부 2장을 보면 러시아 혁명이 당시로서는 완전히 돌발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 망명 중이었던 레닌(V. I. Lenin)조차 자신의 세대에서는 혁명을 보기 힘들 것 같다며 체념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레닌은 1917년 1월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나기 딱 6주 전에 <취리히 청년노동자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이 든 우리 세대는 앞으로 다가올 혁명의 결정적 전투들을 살아생전에는 보지 못할 듯하다”( V.I. 레닌)
- [민중의 세계사], 528쪽




첫 번째 봉기는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에서 발생했지요. 이때가 1917년 2월 23일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황제(짜르) 니콜라이 2세가 물러난 것은 3월 2일입니다.


(좌) 니콜라이 2세 (우) 러시아 황실을 타락으로 몰고간 요승 라스푸틴.


잠깐, 여기서 날짜를 좀 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초의 봉기에 해당되는 2월 23일은 러시아력입니다. 지금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는 3월 8일이지요. 그래서 어떤 기록에는 이것을 '2월 혁명'이라고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3월 혁명'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그레고리력으로 이 날은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해요.


어쨌든 놀랍지 않나요?


날짜를 세어 보면 이 혁명이 정말이지 순식간에 러시아를 휩쓸고 지나가는 통에, 시간적 간격이 마치 공중에서 폭발해 버린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일종의 ‘무시간적 사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은 겁니다.

 

노마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 봉기의 주체입니다. 이 봉기에서 최초에 전면에 나선 주체는 여성들이었다는 것이지요. 좀 전에 말했듯이 이 날은 바로 ‘세계 여성의 날’로서 여성들이 시위를 하는 전통이 1910년부터 지속되어 오던 터였습니다.


1917년 2월 혁명 당시 여성들의 최초 시위모습. 혁명의 전위는 사실 이 여성들이었지요.


혁명의 초기 드라마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는 어느 남성 노동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높은 물가를 끝장내자!”, “굶주림을 끝장내자!”, “노동자들에게 빵을 달라” … 투지가 충만한 여성 노동자 대중이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우리를 발견한 여성들은 손을 흔들면서 “빨리 나오세요!”, “일하지 마세요!” 하고 외쳤어요. 눈덩이가 창문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우리는 혁명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여성들이 외치는 "일하지 마세요"라는 슬로건은 1968년 프랑스혁명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처럼 혁명은 차이가 나는 조건 안에서 반복되는 사건이지요.


68혁명 당시의 그라피티. "결코 일하지 말라"라고 쓰여여 있습니다. 1917과 1968의 차이나는 반복.

그리고 어떤 돌발적인 공격적 이미지가 현실 안에 구현될 때 미온적이던 사람들까지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문으로 날아든 눈덩이'이지요. 활기찬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저 사물이 남성 노동자들을 일깨운 겁니다. 이와 같은 양상은 다른 혁명들에서도 나타납니다.


다시 프랑스 68의 예를 들어 보지요. 제가 쓴 68 혁명에 관한 브런치(혁명과 사랑, 이 한 장의 사진-혁명사#1 혁명은 사랑이다, 1968 프랑스)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때 사건이 발생했지요.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학생운동 진영이 아니었던 일반학생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무리로부터 첫 번째 짱돌이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경찰차 앞유리를 박살 내면서 운전석의 경찰 머리를 강타했지요. 이후 경찰들의 대응은 무자비했습니다. 소르본 대학 ‘영예의 교정’과 그 앞 ‘소르본 거리’가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혁명적 사건의 확장 과정이 유사하지요?


다시 러시아 혁명의 상황으로 돌아옵시다.


이렇게 여성들의 행동에 촉발된 남성 노동자 40만 명이 페트로그라드 광장을 가득 메우는 데에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슬로건은 이제 ‘빵’이 아니라 ‘전제정 타도’, ‘전쟁 종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물리적인 확장 과정과 더불어 슬로건의 내용도 확장됩니다. 즉 생존의 요구로부터 정치적 요구로 말이지요.  


1917년 봉기에 가담하는 군대의 모습


정치적 요구로 시위가 확산되는 것과 더불어 혁명의 적들의 반격이 거세지는 것도 혁명에서는 마찬가지 사태입니다.


러시아 시위대가 짜르의 경찰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 반작용으로 봉기는 군대로 번져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1차 세계 대전 당시 병영에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와 농민들의 아들들이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장교들 가운데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나 맑시스트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이 백주대로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짜르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봉기 4일째, 노동자와 병사들로 구성된 혁명군의 붉은 깃발이 수도를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혁명은 임계점을 넘어섭니다. 러시아 전역이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병사들의 ‘소비에트’(노동자-농민 평의회)에 의해 장악된 것이지요.


소비에트는 이후 10월에 이르러 자신들의 새로운 정부, 즉 혁명의 결과물로서의 ‘새로운 체제’를 구성하고 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이 상간에 마지막 짜르인 니콜라이 2세는 총살됩니다(1918년 7월 17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외치는 러시아 노동자들


놀라운 것은 5백 년 이상 지속되던 러시아 짜르 체제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그 꿈같은 사실이에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사회경제적 조건입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당시의 러시아는 완연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주요 경제동력은 산업이 아니라 농업에 있었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보다는 농민들이 러시아 전역에 산재하여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노동자 계급 구성보다 더 원초적인 사실은 이들의 ‘굶주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앞서 인용문에서 초기 봉기의 슬로건들을 보면 명확합니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여성이든 아이들이든 모두 굶주리고 있었고, 원하는 것은 애초에 ‘빵’이었던 것이지요.

     

그해 가을에 도시는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임금을 올렸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임금 인상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 전체의 경제생활이 완전히 피폐해졌지요.


세계대전은 한창인데 군수품 생산이 감소해 군대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의 봉기로 광산, 철도, 공장이 모두 점거당했습니다.     


빵을 얻기 위해 길게 늘어선 러시아 인민들(1914)


 ‘빵’이라는 말은 ‘생존’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사태의 은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 혁명의 주체들은 ‘생존’을 위해 봉기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실 이 민중들의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급진주의는 당시의 정치적 전위그룹이었던 볼셰비키(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억지로 이끌지 않았더라도 제 자신의 길을 가게끔 되어 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실재로도 볼셰비키들은 봉기가 진행되던 막간에 극장에 들어온 일군의 관객처럼 어리둥절한 자세로 서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묘사일 것입니다. 레닌이 그의 볼셰비키 동지들과 함께 망명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2월 혁명의 후속과정이 진행되던, 1917년 4월이었다는 것이 한 증거입니다.


<이스크라>(Iskra) 1호, 1900년에 창간되어 1905년에 폐간됩니다.


또한 그가 《이스크라》라는 당기관지를 통해 러시아 농민-노동자들과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부에 불과했음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맹률을 감안했을 때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중에서 《이스크라》의 난해한 논조를 이해할만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들 볼셰비키 정치지도자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혁명의 후속조치들, 이를테면 권력 구성의 재배치와 제도형성을 진행하면서 치른 희생과 성과들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요.


따라서 러시아 혁명의 그 폭발적인 잠재력과 급박한 진행과정의 본질적인 동력은 러시아 민중들의 생존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로부터 터져 나온 체제 변혁의 욕망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성-노동자-농민-병사로 이어지는 연대의 전염 과정이에요. 


가만히 살펴보면, 이 혁명은 통시적으로 ‘무시간적 사건’으로 도약하는 것처럼 보이고, 공시적으로는 빛의 속도에 가까운 확산 과정을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연대’의 창발적 연쇄 폭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왜 ‘창발적’이냐 하면, 우선 ‘생존’이라는 수동적 욕구에서부터 ‘체제 변혁’이라는 능동적 욕망으로 전이되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더 중요한데) 혁명적 주체의 형성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이는 특이성입니다.


1917년 당시 볼셰비키 지도자들(중앙 위원회 위원들)


즉 1917년 혁명의 주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급 주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1848년에서 1871년에 이르는 유럽 혁명의 과정에서 주체가 담당했던 다소 불명확하고 신비적인 역할과 단절된 새로운 주체를 상정해야 합니다.


다소 이론적 내용을 여기 적용한다면,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라는 유령이 잠재성의 지대로부터 현실성의 지대로 등장하여 신체를 입었다는 것이지요.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이 주체의 출현을 헤겔의 용어를 빌어 “자유로의 돌파(Durchbruch ins Freie)”라고 표현합니다.


네그리의 관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므로 인용해 놓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Antonio Negri(1933~   )
1917년은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의 결정적 단절점이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자율성을 강제할 정도로까지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의 독립적 변수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완전히 현실화되어서, '자유로의 돌파'를 이루어냈다. 그것은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을 위한 내적인 정치적 동일시(identification)의 초점이 되었다. 그것은 현존하는, 즉각적으로 현실적인, 객관적인 계급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혁명의 주력이 역사 안으로 본격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굶주리고 있었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아와 파국을 조장한 지배계급에 대한 공격의 정당성을 너무나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점도 강조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코리올라누스]의 한 대사를 적어 보지요.


우리는 빈민인 거야. 양민은 귀족들 뿐이지. (...) 그놈들이 남아도는 것만이라도 곰팡이가 나기 전에 우리에게 준다면, 그래도 놈들은 우리를 인간 취급하는 거겠지만 놈들에겐 그만한 인정도 없단 말씀이야. 우리가 굶어 죽는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서는 그만큼 자신들이 유복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뽐내고 있는 거야. 뼈다귀만 남아서 갈퀴같이 되기 전에 놈들을 쇠꼬챙이로 찔러 죽이자. 이것은 빵에 굶주려서 하는 것이지 피에 굶주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신은 아실 거야.


"신은 아실거야!"


어떤 시대든, 어떤 공간에서든 혁명은 이렇게 신성한 폭력으로 다가옵니다.

급작스럽게, 또는 천천히.







<참고문헌>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2004.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영광 옮김, 『혁명의 만회』, 갈무리, 2005

김학준 지음, 『러시아 혁명사』, 문학과 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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