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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May 17. 2018

'어떤' 통일?

- 임진각에서 박현채를 만나다

이번 주에 노마는 가족들과 함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갔다 왔습니다.


바람개비가 쉼 없이 돌아가는 그곳에서


우리 아들은 신나게 뛰어다녔지요.


거대하게 서 있는 <평화 부르기> 을 보고 '우와~!' 탄성도 질렀지요.



거기서 뜻밖에 반가운 분을 만났지요.


바로 박현채 선생이십니다.


돌아가신 분을 어떻게 만났냐고요? ㅎㅎ 노마에게는 상상력이라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바람개비 동산에서 임진각까지 걸으며 저와 박현채 선생은 아주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고 박현채 선생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저항적 지식인 박현채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영상입니다.


 (평화누리 동산 어귀에서 봄햇살 아래 잠들어 있는 선생을 본 노마)


노마: 선생님, 선생님! 어서 일어나 보세요~~

박현채: 으으으... 누.. 누구요?

노마: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질문이 있어서요.


박현채: 애구 한참 달게 자고 있었는데...

노마: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지금 한반도 상황이 아주 급박해요. 고견이 필요합니다.

박현채: 응? 무슨 일인데요?

노마: 이것 좀 보세요.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42434.html

박현채: 오, 종전선언이 있었나요?

노마: 거의 그렇습니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정상 간에 합의가 있었습니다. '판문점 선언'에 그 내용이 담겼어요.

박현채: 아~ 제가 꿈꾸던 통일이 다가오고 있군요.


노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급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다 보니 이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워요. 선생님과 이에 대해 대화하고 싶습니다.

평화누리동산에 서 있는 <통일부르기> 상들입니다. 마치 북녘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네요.

박현채: 그렇다면 제가 한 번 이야기해 볼까요?

노마: 제발 부탁드립니다. 먼저 질문을 드릴게요.


'통일'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통일이 가장 좋은 것인가요?


노마가 오래된 서가에서 꺼낸 박현채 선생의 글들


박현채: 아, 그거 참 오래된 질문이지요. 질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아마 실천되어야 할 통일이 늘 연기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론이란, 특히 미래를 바라보는 이론이란 그 사건이 도래하지 않는 동안에는 늘 논쟁거리니까요.


노마: 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통일을 그리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1116146700005&mobile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잠깐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8명이 통일은 꼭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13명이 통일이 되든 안되든 상관없다였어요. 나머지 9명은 판단 유보였어요.


박현채: 아이고~세상 사람들 인심이 많이 변했네요. 제가 살아있던 20년 전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아마도,


먹고살기 바빠서이기도 하고, 거기다 '민족'이라는 말이 매력적인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겠지요.

노마: 그런 것 같아요.

박현채: 그럼 우리가 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지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노마: 네

박현채: 분단 단계부터 한 번 생각해야 통일에 대한 상이 잡히겠지요? 2차 세계대전 말이에요. 2차 세계대전은 1917년 소련 혁명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이라는 사정,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라는 파시즘 국가와 미국, 영국, 프랑스, 사회주의 소련의 연합 간의 전쟁이라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마:그렇습니다. 그 전쟁이 바로 우리 민족의 명운을 결정하게 되는 조건이 되지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전쟁 지도. 붉은 색 영역이 연합국. 푸른색은 일본 제국주의 영토. 붉은 선은 연합국의 점령 경로입니다.


박현채: 그래요. 그런데 사회주의 소련의 참전은 애초에 있던 이 전쟁의 성격을 좀 다르게 만듭니다.

노마: 그게 뭐죠?

박현채: 애초에 이 전쟁은 제국주의 국가 상호간이 시장분할을 위한 경제전쟁에서 시작되어 무력전쟁으로 발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소련이 참전하면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전쟁의 성격을 띠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전쟁 전에 식민지, 반식민지, 종속국에서의 민족해방을 위한 운동이 고양되고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민족해방운동이 구체화되는 것이지요.

노마: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그래서 식민지 조선에서도 민족해방운동이 발전하게 된 것이군요.


박현채: 그렇습니다. 소련이라는 국가가 본래 노동자-민중의 해방이라는 대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의 주체도 노동자 민중들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이들 외에 기득권층은 제국주의 종주국에 자발적으로 종속되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노마: 맞아요. 조선에서도 나라를 팔아먹을 자들은 모두 기득권 양반들이었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양반들도 있었지만.


박현채: 본래 식민지 종속국의 경우에 자본주의의 발전은 기존의 서구 자본주의 발전과는 달리 중층적인 모순을 드러내지요. 이걸 식민지 종속형 자본주의 발전이라고 하는데요, 특히 자생적으로 발전하는 민족자본이 거의 소멸되거나 제국주의 본국에 자본력을 팔아먹는 매판자본이 발생합니다.

노마: 양반들도 그렇고 막 생겨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들도 결국 반민족적으로 되기 쉽다는 말씀이시군요.

박현채: 네,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층이 아니라 민중 주도의 민족주의 운동이 가능하게 되지요.


(좌) 대표적인 매판자본가인 박흥식, (우) 그의 재판기록

노마: 그런데 그러한 이념 분열이 우리 민족의 분단의 양상을 복잡하게 만든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박현채: 바로 보셨어요. 미국과 소련의 세계 분할권 확보를 위한 쟁투가 민족과 국가 안에서 계급적인 이데올로기 대립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진행되지요. 이렇게 해서 외압과 내부 투쟁이 중층화되고 원인과 결과 관계를 혼동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후의 한반도 분단 상황은 독일의 상황과 많이 유사합니다.

노마: 네 이제 우리 경우를 생각해 보도록 해요.

박현채: 우리 경우에 독일과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른 점이 많이 발견됩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독일의 경우는 1870년 이전 상태로의 환원을 위한 분할이었지만, 한반도는 통일을 전제로 한 잠정적인 군사점령으로서의 분할이었다는 것입니다.

노마: 아, 그거 참 중요한 차이네요.


박현채: 네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요인이 하나 작용해요.

노마: 그게 뭔가요?

박현채: 바로 미국이 공산주의에 대한 아주 극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한국이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친미 단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노마: 그렇다면 그러한 미군정의 목적이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는 목적과 상당 부분 어긋났겠군요.

박현채: 제대로 보셨습니다. 처음부터 미국의 의도는 한국 국민과의 의사와는 거리가 멀었지요.


미국의 반공산주의 흐름을 이끈 존 매카시 상원의원. 그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투옥되고 재판받았다.


미국의 의도는 단 하나, 공산주의가 한국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그것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현채: 이러한 미국의 일차적 목표는 한반도에서 이후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마: 아, 그러니까 해방전후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이 이유에서 온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박현채: 그래요. 해방 후 전국 각지에 건설된 인민위원회, 건국준비위원회에 의한 남북협상이라는 주체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단으로 이어지게 된 가장 근저에는 점령군인 미국의 목표와 관련된 사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마: 그런데 당시의 많은 민중들은 이러한 미국의 목표와는 다르지 않았을까요? 반쪽짜리 해방이나 건국에 대해 많은 회의나 반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박현채: 물론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단선 단정 수립에 반대했지요. 대표적으로 제주도 4.3 항쟁이 그것에 반대한 투쟁이었지요. 그러나 기득권층은 달랐어요. 당시의 기득권층은 구지주세력, 즉 일본 제국주의에 기생하던 사람들, 새롭게 등장한 매판자본가들이었지요. 이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동조해야 했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겁니다.

노마: 아,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일제의 잔재들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군요. 미국이 그들에게 반대급부로 권력을 유지하도록 방기 하거나 도와준 것인가요?

박현채: 그렇지요. 미국이 맨 처음 한 일은 일체의 국정에 자생적인 인민위원회나 건국준비위원회의 권한을 배제한 겁니다. 대신 식민지 시절의 인적, 물적 기구들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나뉘어 분단이 고착화된 배경에는 이처럼 외세에 의한 점령이 있었던 것입니다.


건국준비위원회의 핵심 맴버였던 여운형, 안재홍, 조만식(좌부터)

노마: 이제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 분단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말씀해 주세요.

박현채: 네 그렇게 합시다. 우선 통일이 어떤 원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지부터 말씀드릴게요.

노마: 오, 네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이기도 해요.

박현채: 네 우선 통일이란,


역사의 진보를 담아내는 통일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민중이 중심이 된 민중적 민족주의에 입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족적 과제에 지금껏 충실했던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선량하고 사심 없는 민중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마: 민중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통일이 가장 올바르고 진보적이다, 이런 말씀이시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선생님.

박현채: 그러지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국가권력이 자주적일 경우 민족적 자주의 문제는 구심점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외세와 통일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 된다 해도 다시 외세에 의한 종속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노마: 그렇지요. 자주적인 국가권력, 즉 자주적인 이념을 지닌 정부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통일은 민중들에 의한 민중의 통일이어야 합니다.


박현채: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민족적 통합의 문제인데요, 이것은 남한과 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차적 자세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즉 적대적 대결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를 갈라놓은 이념적 대결이 수입되거나 강요되었다는 생각도 고쳐 먹어야 합니다. 그 이념은 비록 외국의 것이긴 하지만 민족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에 의해 채택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면서 이념대결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념들은 민중들의 생활의 요구보다 앞설 수 없어요. 따라서,


이념적 경직성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로부터 나오는 남과 북의 다원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수렴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통일을 위해 중요합니다.


박현채: 통일 이전이든 통일의 과정이든 민주주의의 원칙이 실현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매판적 기득권자들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되는 경우와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민주적이지 않은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방면에서 부당한 권력이나 위로부터의 강제로 인해 오래가지 못하고 남과 북이 공멸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노마: 듣고 보니, 두 가지 원칙이 모두 '민' 즉, 민중에 기반하고 있네요.

박현채: 그래요. 제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민'에 의한, '민'을 위한 통일이지요.


노마: 그 원칙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박현채: 이 두 가지 원칙이 우리 민족을 '진보'의 길로 가게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즉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이념은 바로 '진보'이지요. 우리 민족이 퇴행하는 길로 가는 것이 통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노마: 그럼요.

박현채: 역사에 있어서 진보는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내용을 갖게 되지만, 경제적으로 살펴보자면 사회적으로 생산된 경제 잉여의 보다 많은 부분이 직접적 생산자, 즉 노동자-농민-민중에게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보란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와 반드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잘못된 독점자본의 성장역사입니다. 그래서 진보란 편중된 잉여를 민중의 것으로 돌리는 지향이지요.

노마: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력'의 문제가 중요해지겠는데요?

박현채: 맞습니다.


모든 사회적 상황은 기본적으로 경제에 의해 규정되지만, 그 집약적 표현은 정치 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박현채: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자기발전 논리를 가지면서 상대적인 독자성을 갖지요.

노마: 아~ 그러니까, 경제가 정치권력을 만들지만, 만들어진 정치권력은 독자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박현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단국가에서 정치권력은 그 계급적 편향성이 더욱 강화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단'이라는 조건을 빌미로 국가권력이 매번 민주주의의 절차를 무시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거든요. 또는 민중들을 겁박해서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도 하고요.

노마: 정확하시군요. 분단 이후 일부 정치세력들이 참, 많이도 그것을 이용해 먹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혁당 고문조작 사건'이 그렇습니다.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고요. 평상시에도 분단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겁주기 일쑤지요.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5417.html

박현채: 맞아요. 인혁당 사건은 정말 가슴 아프고, 분노가 치밉니다.

노마: 그런데 지금은 저런 분단에 기반한 협박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입니다.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많이 깨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http://hankookilbo.com/v/3e4d204e4a4641f58ecc3845aecb9f01

박현채: 그것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정말 우리 국민들 자랑스럽습니다.

노마: 그런데요 선생님, 한 가지 의문점이 들어요.

박현채: 뭐지요?

노마: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민주주의도 이루어어야 하고, 통일도 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현채: 그렇지요.

노마: 그런데 한 가지도 이루기 힘든데 어찌 두 가지를 다?


박현채: ㅎㅎ 제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나요? 일단 차근차근 말씀드릴게요.

노마: 넵^^

박현채: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민족경제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적이 있어요. 제 이론을 대놓고 말하려니 좀 쑥스럽습니다만.

노마: 경청하겠습니다.

박현채: 우선 질문하신 것에 대해 미리 답변을 드릴게요.


굳이 선후를 따진다면 우리 상황에서는 정치권력의 민주화가 선행되는 것이 맞습니다. 단 이 과정에서 자주통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박현채: 이 경우 민주화는 자주적인 민족, 민중 세력에 의한 정치권력의 통합과정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민주화는 민중적 참여 몫의 증대, 정치권력에 있어 매판성과 편향성의 청산, 자주적인 민족문화의 창출과 발전을 가져오면서 자주통일로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마: 맞는 말씀이세요. 그러니 민주화에서 정치권력과 민중 모두 자주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시죠?

박현채: 맞아요.

노마: 그런 면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간의 자주적인 통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고요?

박현채: 그렇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아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마: 외부 변수들이 좀 있습니다. 미국 내 대북 강경파와 한국사회의 수구진영, 그리고 일본 아베 정권이 그것인데요, 이들은 늘 주고받으면서 자주통일 노력을 지체시키고 있지요. 아베 정권은 다소 미온적이라 괜찮은데 앞의 두 세력을 참, 난감합니다.

http://www.fnnews.com/news/201805171332240851

http://www.nocutnews.co.kr/news/4962050


박현채: 한반도 역사에서 그런 일이나 사람들은 늘 있어 왔어요. 이 사람들은 민중의 생활이나 요구에 충실한 사람들이 아니니, 대범하게 받아 앉으면서 통일로 가야 합니다. 미워할 필요는 없어요.

노마: 그 말씀은 어째 불필요하게 감정 낭비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박현채: ㅎㅎ 그런가요? 뭐 그렇기도 합니다. 민중의 요구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자잘한 일들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요.

노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근데, 헉~~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임진각 너머로 해가 지고 있어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해지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저 너머로 북녘땅입니다.

박현채: 아, 정말 아름답군요. 그런데 가슴 한쪽이 아픈 것은 뭘까요? 아직 통일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분단된 조국에 사시면서 통일이 올까지 이것 한 가지만큼은 여러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통일은 민족적 생활양식의 회복이고, 민족공동체의 복원입니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과 함께 가야 합니다. 따라서 통일의 주체는 바로 여러분들 대한민국과 북녘의 민중들이어야 합니다.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박현채 선생의 혼령이 저 노을 너머로 점점 사라진다.)


노마: 아쉽구나. 더 물어볼 것이 많은데...


박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 노마는 더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선생의 꿈이 언제 이루어질까?

 

나는 거기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갑자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그 눈물겨운 장면이 떠오르네요.


남북한의 병사들이 모두 김광석의 노래를 듣던 그 장면이요. 북한 군으로 열연한 송강호(오경필 중사)가 이렇게 말하지요.


"광석이는 왜 이렇게 일찍 죽었니? 야, 광석이를 위해 딱 한 잔만 하자"


오랜만에 한 번 보시지요.








<참고문헌>

박현채 지음, [민족경제와 민중운동], 창작과 비평사, 1988

송건일, 강만길 편, [한국민족주의론 II], 창작과 비평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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